- 칼럼 “기적의 주인공이 됩시다”
미국에서 한인 목회를 섬기는 어떤 목사님이 고생 끝에 예배당도 짓고 안정적인 목회를 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느 주말에 목사님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사택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이 있는 방향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그 주변이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로 요란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 새벽에 불이 다 났네. 참 안 됐다.’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걸어가다 보니 세상에, 바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예배당에 불이 난 것이었습니다. 심장이 멈추는 듯 했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끌면서 예배당 앞에 도착했는데 다행히도 불길이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미 새벽기도회를 갖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대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낙심이 가득하여 탄식부터 나오는데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목사님은 마음 속으로 투덜댔습니다. “불이 나서 다 타버렸는데 무엇을 감사하라는 겁니까?” 감사의 조건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곰곰 따져보았습니다. 새벽기도회가 6시에 시작되는데 화재는 5시 20분쯤에 났으니 감사할 조건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만약에 6시가 넘어서 새벽기도회를 갖는 도중에 불이 났다면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일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또 5시 50분쯤에만 불이 났어도 새벽기도회에 일찍 나오는 성도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테니 아직 한 사람도 나오지 않은 시간대에 불이 났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또 감사할 일이 있었습니다. 불이 난 1층은 예배당이었고, 2층에는 친교실과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2층에 마침 유학생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재로 1층은 몽땅 탔지만 2층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미국인 변호사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가스 때문에 화재가 났으니 가스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소수민족이 미국 법정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에 이긴 판례가 없었으므로 소송에 관심이 없다고 하자, 그 변호사는 자기 보기에 승산이 충분하다며 법적 보호를 받으라고 강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한 번 해 보라고 했더니, 결국 미국 가스회사가 설치 공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보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스회사에서 예배당 2층 건물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체험한 예배당 화재는 전화위복의 기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출판된 책 『하나님이 보여주신 10억 분의 일의 기적』은 1950년 4월호 『라이프』에 실린 ‘성가대’ 이야기를 주제 삼아 엮은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라이프』지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네브라스카 주 베아트리스에 위치한 웨스트 사이드 침례교회의 성가대 연습은 항상 수요일 저녁 7시 20분에 시작한다. 1950년 3월 1일 수요일 저녁 7시 25분, 교회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그 충격으로 교회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인근 라디오 방송국의 방송이 중단되었는가 하면, 주변 집들의 창문이 깨졌다. 그러나 뜻밖의 우연의 일치로 성가대원 15명 전원이 연습에 지각했고, 그 결과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의 신성함을 생각해볼 때, 어떤 사람들이 이 간발의 차이를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간주한 것은 당연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뉴스잡지가 이렇게 변두리 작은 교회의 폭발사고를 특별히 다룬 까닭이 있습니다. 웨스트 사이드 침례교회 성가대원들은 성가대 결성 이후 수년 동안 단 한 사람도 지각하거나 결석한 적이 없었는데, 사고가 나던 날 성가대원 열다섯 명 전원이 ‘각자 다른 이유로’ ‘난생 처음’ 성가대 정기 연습에 지각을 했고, 그들이 교회에 도착하기 직전에 성가대 연습실 바로 밑에 위치한 가스실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에 성가대원 누구 하나 사고를 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분석한 통계학자들은 말했습니다. “결성 초창기부터 수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석도 없었던 15명 성가대원 전원이 각자 다른 이유로 지각해서 폭발사고를 면할 확률은 10억 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10억 분을 넘어 100억 분의 1도 넉넉하신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121편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모든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들고나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지키십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영원불멸이기 때문입니다. 새 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부활의 계절에 우리 모두 기적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할렐루야!
주후 2008년 3월 1일
담임목사 박중식
" 칼럼을 읽으며 .... "
박중식 목사님은 현재 파킨스병을 극복하고 계십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 받은 바울의 표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선교관에서 머물게 해 주신 선교 목사님께도 참 감사를 드립니다. - 목사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항상 언제든지 감사꺼리를 찾는 그런 크리스찬이 되었으면 합니다.
니가 고난을 받고 있느냐 기도 하라 !!!
니가 평안중에 있느냐 찬양 하라 !!!
고난을 당해 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받지 않는 고난을 알겠냐고 실제 암에 걸린 분의 오열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비방하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내려 놓을수 있다면 기적이 생기지 않나 생각 해 봅니다. 자기 자신을 내려 놓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암고침받는 출발점이 아닐까 묵상 됩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의 고난을 흉내내지 못할 것입니다. 창과 대못으로 살해 당하신 예수님은 살이 찟기며, 배가 터지며, 손과 발에 대못에 박혀 그 거친 십자가에 6시간을 매달렸습니다. 더위와 아픔, 그러시다가 오후 3시에 운명 하셨습니다.
고통과 죽음을 안으시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다시 한번... 매번 죽음을 생각 해 봅니다. 죽음의 고통은 잠시 일것 같습니다. 숨을 마지막으로 한번 몰아 쉬고 숨이 멎는 것입니다. 코끝에 호흡이 멈출때 고통도 사라집니다. 죽음이란 그렇게 빠르고 기습적인 것입니다. 고통의 끝 ... 죽음을 묵상해 보십시오.
세상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내려 놓을 것입니다. 모두다 언제 죽을 건지 다 정해져 있습니다. 단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시간만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이 죽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죽길 바라는 지요? 바로 예수님이 찾아 오심과 나를 데려갈 천사를 바라 보며, 스데반 처럼 천국으로 향하길 바래야 할 것입니다. 바로 죽음과 고통과 고난을 안으신 예수님을 믿으면서요..
'새중앙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주의 기도 (소프라노 신영옥) (0) | 2013.11.28 |
---|---|
이목사님 답글 (0) | 2011.05.08 |
이00 목사님의 답글 (0) | 2011.04.12 |
[스크랩] 비아 돌로로사 / 고난의 길 (TomFettke) [요벨스콰이어 4집] (0) | 2011.04.07 |
[스크랩] 순천시립합창단상임지휘자 이병직 (0) | 2011.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