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몬성 (출처- http://cafe.naver.com/sungseoch)
암몬은 롯과 딸들의 잘못된 관계에서 태어난 족속으로 두 번째 딸의 아들인 벤암미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라 할 수 있다. 암몬은 랍바성을 중심으로 도읍을 정하고 북으로는 얍복강, 남으로는 아르논 강을 영토로 정하고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었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암몬이 살고 잇는 지역의 특징은 모압지역에 비해 강우량이 적으며 토지도 상대적으로 덜 비옥하고 수도인 랍바에서 10km 만 나아가면 사막이 있을 정도로 주변 환경이 좋지 못했으며 시막에 살고 잇는 유목민들의 침입을 자주 받는 지형적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암몬은 주변에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길르앗 산지로 영토를 확장하고자 자주 침입하였는데 이러한 암몬의 모습은 입다의 시대나 사울의 시대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암몬은 열악한 환경상 요단 동편 지역은 소국가중 가장 힘이 약한 나라였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소국인 암몬 왕국은 주전 8세기 말, 앗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해 그 후 4백년이상 암몬과 수도 랍바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주전 3세기 희랍시대에 들어와서 암몬 지역과 수도인 랍바는 교통의 요지인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한 헬라왕 프톨레미 2세 필라델피아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엇고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 헬라식 이름인 '필라델피아'로 바뀌게 된다. 다시 주전 63년에는 이스라엘 땅을 포함해서 이 지역전체는 로마제국의 통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지역은 로마에 의해 데가볼리 중 하나로 다시 크게 융성하게 된다. 또한 주후 4세기초에서 7세기초에 이르는 '비잔틴' 시대에 이곳에 기독교 전파와 함께 교회들이 건설되면서 주교가 있는 요단강 동편지역교회의 중심지가 되며 황금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후 630년대, 당시 신흥종교인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정복했고, 그때부터 이 도시의 이름도 '암만'으로 바뀌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랍바성 (사진, 글 출처- http://oldtestament.maru.net)
암몬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구약시대의 사건으로는 다윗과 우리야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를 랍바성 전투의 최선두에 서게 하였고 치열한 성벽전투에서 우리야만을 앞세우고 다른 군사들은 뒤로 후퇴하여 결과적으로 우리야가 성안의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어 죽게하는 작전을 폈던 것이다. 이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잇는 랍바성이다. 암만에 남아 있는 랍바성의 흔적은 '알 칼라'(Al-Qala)산 정상부분 에 있는 성채에서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발 850m로 암만의 중심부에서 제일 높은 이 산의 정상 부분에는 4천∼5천년전부터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구약시대의 다윗이 빼앗았던 성읍인 랍바성의 일부이며 오늘날 대도시가 된 암만도 이 성채를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할 수 있다. 성채구역 안에는 고대의 성벽, 로마시대에 건축한 웅대한 '헤라클레스' 신전,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 이슬람 시대의 왕궁 등 귀중한 유적들이 많이 있어 오늘도 활발한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암몬성
암몬성 (출처- http://blog.paran.com/jhd112/14818027)
암몬성벽
요르단의 수도 암몬 시내
암몬 시내 (출처- http://cafe.naver.com/sungseoch )
로마시대 때 세워진 5,000명 규모의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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