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역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오기까지-사본의 역사> 강사 : 민경식 박사(연세대)
구텐베르크가 1450년경 인쇄술을 발명하고 책이 활자화되기 전, 책은 사람들의 손으로 직접 필사(筆寫)되어 만들어졌다.
성경도 기독교 신자 또는 전문적인 필사자들에 의해 필사되어 전해졌으며 지금까지 발굴,발견되어 밝혀진 성경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A.C. 2세기경의 것이다.
필사를 거듭하여 사본들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성경의 내용은 쓰는 이의 여러 실수에 의해 많은 오류가 생기고 왜곡되었다.
그래서 사본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신약성경을 원본에 가깝게 회복시키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현재 사본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작업은 독일의 신약성서본문연구소(INFT)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복원한 신약성경 원본은 세계 여러 나라의 성서공회를 통하여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 사본의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성경이 어떤 책인지, 그 역사까지도 알아야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와 예수님을 잘 이해할 수 있다. * 발견된 사본들은 많이 훼손되어 있고 극히 일부의 기록들인데 어떠한 방법으로 회복시키는가?
사본을 그대로 베껴 쓴 후 알아 볼 수 있는 글자, 단어를 통해 어디에 있는 말씀인지 추적하여 본래의 모습을 유추해 나간다.
파피루스 사본에서 빠진 부분 중에서 다른 사본에 있는 경우에는 원문이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괄호[( ) or <>]에 넣어 우리가 보는 성경에 기록하였다.
* 신약성서 사본의 종류 Ⅰ. 파피루스 사본 20세기 이전에는 4세기 이후 제작된 양피지 사본이 최고(最古)였으나, 1896~1897년 이집트의 옥시린쿠스(Oxyrhynchus) 발굴을 통하여 ‘파피루스 사본’이 발견되었다. A.C. 120~150년 경 쓰여졌으며 요한복음 18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Ⅱ. 대문자 사본 대문자 사본이 소문자 사본보다 더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
1. 양피지 사본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이용해 종이를 만들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C. 325년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가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비싼 양피지에 성경을 필사하였다.
양피지에 필사된 ‘시내사본’은 시내산 기슭에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1844년 티센도르프를 통하여 처음 발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하여 추가로 발견되었고 현재는 독일, 영국, 이집트, 러시아에 보관되어 있다.
2. 바티칸 사본 Ⅲ. 소문자 사본 10~11세기 이후 필사되었고, 성경책이 화려해져서 글씨체에 장식을 하고 상징적인 그림이 많아졌다. 이는 막강해진 교회의 힘을 반영한 것이다.
Ⅳ. 성구집 말씀 모음집으로 매주 또는 매일매일 읽어야할 구절을 쓴 것이다.
파피루스 사본 118개, 대문자 사본 318개, 소문자 사본 2877개, 성구집 2433개가 발견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번역대본까지 합하면 25,000개 이상의 사본이 있어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자료들이 있다.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원문을 정확하게 회복해 가고 있으며 성경은 계속 변화되고 있다.2008년 3월 13일(목)
<신약성경 인쇄본의 역사> 강사 : 민경식 박사(연세대)
* 사본(寫本)과 인쇄본고대 사회에서 책을 만들고 복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것이었는데 이 때 만들어진 책을 ‘사본(寫本)’이라고 한다.
필사하는 과정이 곧 책을 만드는 과정이었고, 신약성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신약성서 사본’이라고 한다. 1450년경에 들어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여 책을 인쇄하여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의 과정을 통해 발행되는 책을 ‘인쇄본’이라고 한다.
신약성서 인쇄본의 역사
1.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가 인쇄한 ‘라틴어 성서’(1450~56년으로 추정) 구텐베르크(1400-1468)가 인쇄술을 발명한 후 인쇄의 과정을 통하여 처음 만든 책이 ‘라틴어 성경(성서)’이다.
‘구텐베르크 성경’ 또는 ‘42행 성경’이라고도 부른다.
라틴어 성경이 처음 선택되어 인쇄된 이유는 라틴어권 기독교 세계에서 라틴어 성경이 불가타(공통) 성경(Vulgata Bible)으로 알려져 서로마 카톨릭의 공식 성경이 되었고 이로써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읽혀지는 대표적인 책이었기 때문이다.
(‘42행’의 의미 : ‘42’라는 숫자상의 의미는 없다.
손으로 필사된 책들은 페이지마다 정해진 틀이 없었고 똑같은 본문을 가진 책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활자를 이용해 책을 인쇄함으로써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같은 틀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라틴어 성경’은 역사상 최초로 행수가 일정한 책이 되었다.)
* 인쇄술을 통하여 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과 그 영향력 금속활자는 사각기둥 모양의 금속 윗면에 문자나 기호를 양각으로 새긴 활자들로, 이를 조합하여 단어로 만들고 틀에 넣은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면 책이 인쇄된다.
인쇄술의 발명은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 컴퓨터의 출현, IT기술 발전만큼 혁신적인 영향력을 불어왔다.
책을 만드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고 그 제작비용도 훨씬 저렴해져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인쇄술 발명을 통하여 60년 후 일었던 루터의 종교개혁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하였고 이 반박문이 인쇄를 통하여 전 유럽에 퍼지게 되어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의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보였으나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실패하였다.)
2.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umus)가 인쇄한 최초의 그리스어 신약성서(1516년 3월 1일) 에라스무스가 발행한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된 최초의 성경으로, 이후 300년 이상 서구 유럽 사회의 인쇄업자들이 발행한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표준 본문이 되었다.
그러나 다소 성급하게 수집하고 편집되어 ‘급조’된 성경이었다.
같은 시기에 스페인의 추기경이었던 히메네스 드 시스네로스(Ximenes de Cisneros)에 의해 여러 언어로 된 대조성경이 제작 중이었는데, 이 사실을 안 에라스무스와 출판업자 요한 프로벤(Johann Froben)은 히메네스의 성서가 발행되기 전 먼저 출판하기 위하여 5개월 만에 이 성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본은 양피지여서 매우 두꺼웠기 때문에 복음서를 중심으로 1권씩 묶어 제작하였는데, 에라스무스는 4복음서(1권)/사도행전, 공동서신(1권)/바울서신(1권)/요한계시록(1권) 총 4권의 사본만을 참고하여 편집하였고 이 사본들은 12세기 소문자 사본으로 모두 중세 이후 후대의 열등한 것들이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경우 사본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읽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고, 끝의 여섯 절이 쓰인 마지막 페이지는 떨어져 없어진 사본이었다.
그래서 이 빠진 부분은 라틴어역 불가타 성경의 본문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넣게 되었고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들이 생기게 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성서는 다섯 번에 걸쳐 개정․발행되었지만 이것은 모두 성급하게 급조된 초판에 토대를 두고 있었으며, 이후 여러 사람들에 의해 출판된 그리스어 신약성서들은 오류투성이였던 에라스무스 성서의 본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 에라스무스의 성서가 12세기 사본들을 참고하여 편집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들 (1) 요한의 콤마(Johannine Comma) - 요한1서 5장 7~8절 요한1서 5장 7~8절의 말씀은 ‘성삼위일체’를 분명하게 서술한 말씀으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락은 불가타(공통) 성경(Vulgata Bible, 라틴어역 로마 카톨릭 공인 성경)에서는 발견되지만 거의 모든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이어서(전승되었지만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필사되면서 내용이 첨가․탈락되어 변화된 것) 후대의 그리스어 성경을 참고한 에라스무스의 신약성서에는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에라스무스는 신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게 되었고 이 구절을 그리스어 사본에서 찾아 보여주고 다음 개정판에는 그 단락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였고 이 구절을 위해 16세기에 새로 필사된 사본, 즉 이 서신의 그리스어 본문을 베끼다가 이 대목에 와서 라틴어 본문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은 사본이 나타나 1519년 두 번째 개정판부터는 ‘요한의 콤마’ 부분을 삽입시키게 되었다.
(2)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생명책'을 철자가 비슷한 '생명나무'로 잘못 기록하였다.
라틴어는 정관사가 없고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 쓰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비슷한 발음, 철자의 다른 단어로 오인하여 단어를 바꿔 써서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3. 히메네스 드 시스네로스(Ximenes de Cisneros)의 ‘다중 언어 대조성경’(1517년) 스페인 추기경이었던 히메네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함께 여러 언어로 된 성서를 같이 제시하면서 편집한 대조성경이다.
구약성서의 경우 원어인 ‘히브리어’와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 ‘그리스어 70인역’(B.C. 2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번역한 그리스어 구약성서)을 같이 제시하였다.
성경 말씀은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그 좌우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열하였는데, 그 이유는 성서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그 좌우에 강도가 있었던 것과 같이 가운데의 ‘라틴어’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왼쪽의 ‘히브리어’는 그리스도를 죽인 거짓된 유대인들을, 오른쪽의 ‘그리스어’는 서방교회의 적인 동방 정교회의 그리스인들을 의미하여 그들의 언어를 배치한 것이다. => 에라스무스의 성서는 학문적 오류가 많고 사본과 다르게 많은 변화들이 있었으나, 최초 인쇄되어 발행된 성서이기 때문에 발행된 후 300년 동안의 성서 역사를 지배할 수 있었다.
또한 이후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 등이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들의 기초가 되었다.
이와 같이 에라스무스의 성서를 본문으로 한 성서들은 16~17세기에 들어 다양하게 출판되었지만 본문이 거의 똑같았고 이에 차별성을 주기 위하여 여러 인쇄업자들은 여러 장치들을 추가하기 시작하였다.
4.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 1506~1559)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① 제3판 ‘본문비평장치’가 있는 최초의 성경(1550) 본문은 에라스무스 성경과 비슷하나 3판부터는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본문비평장치’가 수록되었다.
스테파누스가 참조한 다양한 사본에서 에라스무스의 성경, 12세기의 사본과 다른 부분을 찾아 페이지 가장자리에 정리한 것으로, 독자들이 여러 해석과 내용을 살펴보고 성경읽기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다.
② 제4판 ‘장절구분’이 있는 최초의 성경(1551) 이전까지의 성서본문은 장절 구분이 없었지만 4판부터는 지금 우리의 성경과 같이 장절을 구분하여 인쇄하였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말 위에서 장절구분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오늘날 신약성서에서 절 구분이 어색한 부분들이 남아 있다.
또한 ‘절없음’ 현상이 생겨서 후대에 추가된 문장이라 삭제되었음을 의미하는 ‘절없음’ 문장과 함께 ‘어떤 사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라는 각주가 있게 되었다. - 사도행전 15장 30~35절 - 사도행전 8장 34~38절‘절없음’ 부분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앞뒤 문맥과 내용을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하여 후세에 편의로 첨부한 것이다.
그래서 원본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원본문과 같이 삽입한 내용을 빼고 ‘절없음’으로 남겼다.
5.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제9판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출판했고 그의 사후 1611년에는 제10판이 나왔다.
지금의 『The King James Version[KJV]』은 베자의 신약성서 제10판을 본문으로 하여 개정한 것이다.
6. 보나벤투르 엘제비어(Bonaventure Elzevir)와 아브라함 엘제비어(Abraham Elzevir)의 그리스어 신약성서(1633년)와 ‘수용본문(Textus Receptus)’ 16~17세기 발행되는 그리스어 신약성서들은 본문이 거의 똑같아서 경쟁이 되거나 비교할 수 있는 본문 형태가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보편적인 본문이 되었다.
이에 대해 삼촌 조카 관계인 보나베투스 엘제비어와 아브라함 엘제비어는 1633년 출판한 성서의 서문에서 “귀하는 이제 모두가 수용하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변개된 것이나 개악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라고 기록하였다.
이 문구를 통하여 모두가 수용하는 본문 즉, ‘수용본문(Textus Receptus, 약자로 T.R.)’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12세기의 열등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본문으로 한 이 수용본문은 KJV를 비롯하여 1881년까지 여러 성서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수용본문(T.R.)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항하여 본문비평을 추가한 성서는 1707년 존 밀의 성서부터이다.
그러나 T.R.이 아닌 본문을 인쇄하는 것은 교회의 힘에 대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쇄하지 못하고 본문에 대한 문제제기만 하였다.
19세기 초 T.R.이 아닌 본문을 편집하여 출판하였지만 우수한 본문이 아니어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존 밀(John Mill)의 그리스어 신약성서(1707년) -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 - 요한 야곱 그리스박흐(Johann Jakob Griesbach) - 칼 락흐만(Karl Lachmann) ♣ 영국 브룩 포스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과 펜튼 존 앤서니 호트(Fenton John Anthony Hott)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원본(The New Testament in Original Greek)』(1881년) : 신약성서 본문을 회복하고 이어나가도록 연구방법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성서는 4세기 경의 티센도르프의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근거로 하여 재구성하였는데, 최근 들어 초기 사본들이 발견되면서 이 사본들이 2~3세기 사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우수한 본문을 회복한 것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 Nestle의 『Novum Testamentum Graece』(1898년) : 교계에서도 T.R.을 극복한 본문으로 인정하고 있는 성서로, T.R.의 종말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 개역성경도 본문으로 하고 있다. 본문 비평 학문이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사본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원본문 회복이 빨라지고 있고 가까워지고 있다. 2008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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