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개관(지식,용어해설,상식등)

히브리서

한주랑 2012. 2. 2. 18:45

1. 서론

히브리서를 공부하는 사람은 그 독특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본 서신은 신약의 어느 서신과도 같지 않으며 본서 자체의 독특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여기서 문제들이란 요약하여 말하자면 본서신의 저자, 독자, 목적, 저작 시기, 저작 동기, 그리고 제 1세기의 기독교, 유대교 및 헬라문화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2. 저작 동기-왜 기록되었는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단일 집단이거나 아니면 지역적으로 넓게 퍼져있거나 간에 그리스도로부터 모세에게로 되돌아갈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배교의 상황은 불신앙(3:12), 행위(5:13,14), 공중 예배의 무시(10:25), 연약한 기도(12:12), 교리상의 불안정(13:9), 가르치기를 거부함(5:12) 및 성서의 경시(2:1)에 근거된 당면한 위험이었다. 그러한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의 열등함을 드러낼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세가지의 개념이 표출되어 있는데, 첫째는 권면(13:22)이고 둘째는 다섯번에 달하는 일련의 경고들(2:1-4;3:7-19;6:4-12;10:26-31;12:15-17)이며 셋째는 위로 또는 보증이다. 이러한 개념들에 근거하여 저자는 배교하려는 경향에 반대하고 있다. 본서의 독자에 의해 전개된 추론의 글은 흥미로웠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면 박해를 받고 유대의 관습을 따르면 박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유대교로 전향하여 박해를 모면하려 하지 알겠는가? 마음이 끌리는 쪽은 자명하다. 그 대답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본 서신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이 유대교의 주장에 대하여 조목조목 논박되기 때문이다.

 

 

3. 저작 시기 및 목적-누구에게 썼는가,

히브리서의 저작 시기는 많은 요인들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후 68년 이후의 유대인과 로마인의 갈등과 주후 70년의 성전 파괴이다. 갈등, 성전 또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본서신은 주후 68년 이전 아니면 80년 이후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주후 68년 이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디모데(13:23) 및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13:24)에 대한 언급과의 관련속에서 보아야 한다. 또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주후 95년)에서 드러난 히브리서에 대한 지식에는 본서의 저작 시기 및 목적이 담겨있다.

 

 

4. 저자-누구에 의해 기록되었는가,

누가 히브리서를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은 본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장 큰 문제로 남아있다. 사도 바울, 아볼로, 바나바, 누가, 디모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실라, 아리스티온 그리고 집사 빌립 등이 모두 지지할만한 논거를 지닌 저자로 제기되어 왔다. 동방과 서방에 걸쳐 초대 교회 및 교부들의 전승을 조사해보면 견해들이 다양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서신 자체에는 저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본서의 저자를 입증함에 있어서 두가지의 주된 견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1)바울이 저자라는 견해-이 견해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알려지지 않은 저자를 포함시킬수 있는데까지 이르렀으며 따라서 독특한 바울적 취향을 히브리서에 전하였다. (2)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승과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이 견해는 구약에 유형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근거하였다. 여기서는 히브리서의 유비의 근원이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의 작품에 들어있는 유비와 같다고 추정한다.

 

 

5. 히브리서의 논제-저자의 주제

히브리서 저자의 논제는 두개의 주된 사상에 매여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상들이 논리적인 방법으로 설명되어 있다. 첫번째 사상은 3:1과 12:3의 \"생각하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이 두 예에 담긴 권고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3:1에서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 12:3에서는 믿음 생활의 궁극적 모본이신 참으신 자로 생각될수 있다. 서신의 논법에 의해, 독자들은 제사장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된다. 서신 전체에 걸쳐 드러나는 대조들은 천사, 모세, 아론, 멜기세덱, 레위의 제도, 그리고 구약에 기록된 신앙 생활의 가장 좋은 실례까지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우윌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고 있다(제 11장).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하나님께서 열납하실만한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신 바로 그 곳에 들어갈 것을 보증하시고 탄원과 요구를 즉시 들으시겠다고 확증하시면서 성소 내에서 지금 말씀하시고 있다(4:14-16). 두번째 사상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동사와 함께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13:22)라는 권면(헬라어로는 파라클레시스)의 말에서 나타난다. 이 말은 히브리서의 비공식적인 제목이라고 불려 왔다. 파라(Farrar)는 서신에 기록된 모든 지식이 독자들을 권면할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유대인이기도 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생각\"(12:3)하고 또한 \"권면의 말을 용납\"(13:22)했다면 박해와 시험과 어려움이 보다 쉽게 여겨졌을 것이다. 본 서신의 전체적인 목적은 낙담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며 또한 믿음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수많은 실례들을 통하여 가르치고 격려하는 일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저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제 7장)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영원성(즉 불변성)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있다.

 

 

6. 저자의 사상과 개념-기원 및 용례

히브리서의 독특한 형식과 문체는 신약의 다른 서신들과 구별된다. 저자는 신약의 어떤 다른 저자들과도 다른 방법, 구성 및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 본서의 주된 관심이 실제적이므로 저자는 실제적인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신학적 개념들을 권면, 경고 및 위로에 대한 언급이라는 특수한 틀 속에 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학 사상 및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는 주된 주장을 옹호하여 다른 진리 위에 하나의 진리를 내세우며 이러한 사상들을 말한 사람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고의 말들이 군데 군데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경고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독자들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약의 저자들 가운데에서 자신만이 선택한 어떤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 예를들면, 어느 누구도 멜기세덱이 의미하는 것 (7:1-14)을 논하지 않는다. 회개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고의적인 죄(10:26)라는 주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독특하게 접근하고 있다(12:17). 저자의 많은 개인적 개념들이 후세들에게 해석의 문제로 어려움을 주어왔다. 히브리서의 모든 사상들 가운데 가장 고도로 발전된 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사상이다. 그것은 히브리서만의 독특한 것으로 아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의 표현에서 세가지의 \"자료\"가 명백히 드러나는데 (1)레위 방식의 구약 제도 (2)유대교 (3)사도 시대의 기독교 등이 그것이다.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부르심을 받았으며 인생을 지닌 분이시다(2:14-18;4:15,16;5:1-3), 그분은 인간들에게 요구되는 것을 채우셨다(2:17,18).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여셨고(10:19,20) 또한 \"하늘\"과 \"은혜의 보좌\"에 가까이 나아가게 하셨다(4:14-16). 그분은 완전하신 최후의 희생 제물이 되셨다(10:18). 그리스도의 제사장적인 사역으로 인하며 신자들은 강력한 믿음과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풍부하나 주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능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자(1:1) 및 창조의 대행자로 표현된 것은 본체라는 말의 의미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2.신약.구약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히 1:1-3)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거나 하시는 이유

 

11.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기 위하여

1)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 돋기 시작할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암 7:1, 4, 7).

2)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렘 38:21).

 

 

12.하나님의 뜻을 보이거나 알리기 위하여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창 41:39).

 

 

13. 하나님의 비밀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14.하나님의 의향을 가르치기 위하여

1)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2)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사 28:26).

 

 

15.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렘 1:4)

 

 

16.하나님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알게하기 위하여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엡 3:3).

 

 

17.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18. 백성으로 방자하게 행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19.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기 위하여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 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롬 16:26).

 

 

20.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갈 2:2).

 

 

21.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여호와께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 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22.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하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17)

 

 

23.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는줄 알게 하기 위하여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24. 봉사하게 하기 위하여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찌니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일곱이 일곱 양각 나딸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 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수 6:6-9).

 

[4]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방법

 

25.그리스도를 통하여

1)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26. 성령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 1:17).

 

 

27.천사를 통하여

창 18:1-22. 19:1-3. 민 22:26-35. 눅1:11-25. 눅 1:26-38. 마 1:18-21. 눅 2:10-14. 마2:13-15. 행 1:11. 행 10장. 행 27:23-26. 계 1:1. 단9:21-27.

 

 

28.선지자들을 통하여

1)선지자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2)

2)다니엘-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단10:1)

 

 

29. 사도들을 통하여

1)사도들(고전 2:10; 9. 1)을 보라).

2)바울-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6).

 

 

30.환상과 꿈을 통하여

창 15:12-16. 창 28장. 창 37:19.

-꿈과 환상을 보라.

 

 

31.믿음을 통하여

1)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살리라 함과 같음이니라(롬 1:17)

2)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32.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1)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출 6:6, 7)

2)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3)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신 3:24).

4)신 11:1-7.

5)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수 3:10).

 

 

33.자연을 통하여

1)출 14장. 시 93, 95, 107, 114편.

2)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서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시 19:1-6).

3)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암 5:8).

4)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9)

5)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시 147:15-18).

6)시 36:7; 147:9.

 

3.그리스도의 우월한 인격(히 1:4-4:13)

 

[2] 그리스도의 성품

 

22.거룩하심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라 일컬으리라(눅 1:35).

 

 

23.의로우심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24.공의로우심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25.궤사가 없으심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26.죄가 없으심

1)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요 8:46).

2)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마 27:4).

 

 

27. 흠이 없으심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9)

 

 

28. 온유하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29. 자비하심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2:17).

 

 

30. 겸손하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31. 용서하시는 마음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눅23:34).

 

4.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히 5:1-10)

 

[16]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135.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음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7, 18).

 

 

136.시험을 받았으나 죄가 없으신 대제사장임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137.하나님이 세우심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 5:5).

 

 

138.영원하심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139. 무죄하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140. 높이 올리심

1)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8:1)

2)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10:21)

 

5.신앙 성숙에 대한 권면과 배교의 무서운 결과에 대한 경고(히 6:1-8)

 

[4] 배교에 대한 경고

 

26.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할 것임

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4,5).

2)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막 15:5,6).

 

 

27.마지막 때에 많이 나타날 것임

1)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2)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3)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1-3)

 

 

28.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29.미혹에 이끌려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7).

 

 

30.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온전한 상을 얻으라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할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요이 1:8)

 

8.속죄와 그리스도의 보혈과의 관계(히 9:18-22)

 

[11]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

 

51. 예언됨

1)여호와께서 고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 53:10-12).

2)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단9:24-26).

 

 

52.상징됨

1)사 63:1-9

2)슥 3:3-9

 

 

53.성취됨

1)행 8:27-39

2)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3-26).

3)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1:18-21).

4)벧전 2:21-25

 

9.믿음이란 무엇인가?(히 11:1-3)

 

이것은 \'믿는다\'라는 동사에 해당하는 명사로서, 이에 대한 히브리어는 아만의 히필형(hiphil form)인 헤에민이며, 이에 대한 헬라어(70인역과 신약성경)는 피스튜오이다. 피스튜어는 신약성경에 사용된 핵심적인 단어로서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는,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다방면의 신앙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데 언제나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개념의 복합성은 피스튜오라는 동사가 사용되는 다양한 구문(構文) 속에 나타나 있다(호티절이나, 여격(caccusative)과 부정법(infinitive)으로써는 믿는 바 신앙을 나타냄. 그리고 엔과 대격(dative), 혹은 에피와 대격으로써는 믿는 대상을 가리킴. 또한 에이스와 여격, 경우에 따라서는 에피와 여격으로써-이것은 신약성경상 가장 보편적이고 특징적인 용법으로서 70인역에는 불과 몇 번 나올 뿐이고, 고전 헬라어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독특한 용법임-믿음의 대상에 대한 신뢰의 동적(動的)인 개념을 나타냄). 아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명사인 에무나(70인역에는 피스티스로 번역되어있음)는 믿을 만하다(미덥다)는 의미에서 신실함을 가리키고, 피스티스가 때때로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롬 3:3-하나님의 미쁘심, 마 23:23, 갈 5:22, 딛 2:10-사람의 신실함). 헤에민이라는 단어는 보통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키는데, 하박국 2:4에서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신앙적 응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의인의 성품과 갈대아인의 교만성이 문맥상 서로 대조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 구절에 나오는 믿음이란 신실함 이상의 뜻(넓은 의미의 믿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즉, 여기에서의 믿음이란 자신을 하나님에게 의탁하고 하나님의 굳게 신뢰하며,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마음 자세를 가리키는 것 같다.

분명히 바울 사도와 같은 성경 기자들은 이 본문(합 2:4)을 이상과 같은 의미로 인용했으며(롬 1:17, 갈 3:11, 히 10:38). 신약성경에서 피스티스와 피스튜오도 언제나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피스티스와 피스튜오, 이 두 단어는 실제로는 기교적인 용어로서(요한은 동사형인 피스튜오를, 바울은 명사형인 피스티스를 더 애용했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자비(사랑, 인자)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하신 중보이심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오직 그만을 의지한다는 복합적인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피스티스와 피스튜오 이 두 단어는, 그것들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나 복음이나 진리나 약속을 그 목적어로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목적들이 전혀없이 사용되든지, 보통 이상의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두단어는 모두 확신에 따르는 위탁(맡김)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믿음이 후자의 용어들로써만 규정된 문맥에 있어서도(예컨대, 히 11:1을 히11장의 나머지 모든 구절들과 비교하라) 그러하다. 신약성경을 볼 때, 믿음의 속성이란 그 믿음으로써 받아들인 진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한다.

 

이상과 같이 믿음을 넓은 개념으로 해석하지 못할 몇 가지 경우들도 관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1)신약성경의 기자들 중에서 야고보만 이 믿음에 대한 명사형(피스티스)과 동사형(피스튜오)를 사용하여 진리에 대한 단순한 지적인 동의를 가리켰다(약 2:14-26). 그러나 여기서 그는 분명히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자들 -당시 유대교인들의 신앙 개념을 그대로 간직한 유대인 출신의 개종자들- 의 믿음에 대한 개념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가 일상적으로 사용한 믿음에 대한 용법이 이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예컨대, 약 5:15에 언급된 믿음은 보다 더 완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음). 어쨌든 야고보가 귀신들도 가지고 있는 그러한 지적인 믿음이 합당치 못한 믿음이라고 말한 요지는 신약성경의 나머지 책들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컨대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2:26)고 말한 것은 본질적으로 바울이 \"행함이없는 믿음이 원칙상 믿음이 아니듯이 믿음이 없는 행위도 참된 행위가 아니다\"고 말한 것(참조, 갈 5:6, 딤전 5:8)과 똑같다.

(2)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적 추이에 따라서 믿음이란 그 믿는 바 진리의 실상(진리가 실제로 이행되는 모습)을 가리킨다(예컨대 유3절, 롬 1:5(?), 갈 1:23, 딤전 4:1,6).이것이 2세기에는 믿음에 대한 표준적인 용법이 되었다.

(3)바로 그리스도로부터 믿음으로써 이적을 행하는 믿음(마 17:20,21, 고전 12:9, 13:2), 혹은 자기에게 이적적인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믿음을 갖는 (마 9:28-29, 15:28, 행 14:9) 믿음에 대한 좁은 의미의 용법이 유래되었다. 그러나 구원받는 믿음에는 언제나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고전 12:9). 또한 역으로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는 믿음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마 7:22,23 참조)

 

<1> 일반적인 개념

믿음에 대한 성경상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1)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을 함의하고 있다. 신앙이란 말에는 보통 명제들(신앙의 내용들)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나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함의되어 있다. 대상(인물)에 대한 신앙의 경우에, 대상에 대한 신앙이란 믿는 행위 자체에 대한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전제이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 대한 신뢰에는 반드시 예상되는 행동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의 내용이온전히 주지되지(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는 그에 대한 행동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뜻(목적)에 관하여 계시하신 내용을 믿는 것이란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고, 예수님을 고대하고 있던 메시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육하신 아들로 인정하는 것은 이러한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간주되었다. 성경의 기자들은 아직 예수께 대한 지식이 완전하지 못한 그러한 형태의 신앙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행19:1이하).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과 그리스도되심을 의식적으로 부인하는 신앙은 인정치 않았다(요일2:22-23, ;요이7-9절)-이것은 단지 우상 숭배(요일 5:21)와 인위적인 비진리에 대한 숭배에 불과할 뿐이다. 서신들 속에서 믿음이란 진리를 알고, 믿으며, 순종하는 것으로 자주 언급되어 있음을 볼 때(딛 1:1, 살후 2:13, 벧전 1:22등) 정통(전통)이 믿음의 기본적 요소로 인정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갈 1:8-9 참조)

(2)믿음이란 하나님의 증거를 믿는 것이다. 신앙이란 자증적(自證的)인 확신이 아니라 증거(증언)에 근거한 확신이다. 어떤 특정한 신앙이 확실한 믿음으로 취급될 것인지, 아니면 의문스러운 하나의 견해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의 여부는 그것이 신뢰할 만한 증거(증언)에 기초한 것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성경에는 신앙적 확신이 확실한 사실로 간주되었고 지식과 동등시 되어 있다(요일 5:18-20 등). 그런데 이것은 이러한 신앙적 확산이 자증적인 신비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딛 1:2), 따라서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일들을 증거하신 것(요 3:11,31-32)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한 것(행 10:39-43)은곧 하나님의 증거이다(요일 5:9이하).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하신 증거들은 하나님 자신의 증언들이다(참조, 고전 2:10-13, 살전 2:13)-이러한 의미에서 그 증언들(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분으로 확정하는 것이며(요 3:33), 그 증언들(성경)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요일 5:10).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사도들의 증언과 성경의 증언들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증언으로 인정하는데 근거한다.

(3)신앙이란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선물이다. 타락한 인간은 죄와 사단으로 인하여 너무나 어두어진 나머지 (엡 4:18, 고후 4:4), 주님의 증언과 사도들의 증언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 증언들의 실제성을 이해하지(보지) 못하며(요 3:3, 고전 2:14), 와서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탁하지도 않는다.(요 6:44,65). 그러다가 성령께서 그들의 조명(照明)하신 후에야 비로소 이 모든 일들을 하게 된다(고후 4:6참조). 이처럼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이끄심과 기름부으심을 받아들인 자들만이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 안에 거한다(요 6:44-45, 요일 2:20,27).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구원받는 믿음을 주시는 주님이시다.(엡 2:8, 빌 1:29, \'부르심\', \'소명\' 항목과 \'중생\' 항목을 보라)

 

<2> 성경적 제시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의 개념은 은혜와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 -이 위에 신앙이 기초해 있고 확정되어 감- 로 전개되어 있다. 구약성경에는 믿음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묘사를 통해서 정의되어 있다. 즉 믿음이란 여호와께 의존하고 의탁하며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것이며, 여호와께 매달리고 여호와를 기대하며, 여호와를 우리의 방패와 망대로 삼고 그에게로 피하는 것 등 서술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시편 기자들과 선지자들은, 각각 개인적인 용어와 민족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시고 자기 종들을 축복하시리라는 그의 뜻을 성취하실 것을 추호도 의심없이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이사야는 인간의 도움을 의뢰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믿음과 위배된다고 탄핵했다(사 30:1-18 등).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의 성도들이 믿음으로써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으며, 믿음으로써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순종했고, 믿음으로써 영웅적인 견인성을 나타낸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신앙적 표본으로 간주되어 있다(롬 4:11-25, 히 10:39-12:2). 여기서는 지속성(持續性)과 숭고성((崇高性)이 공언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뜻(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히 1:1-2)이란 현세적 구원을 믿는 지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상과 같은 믿음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왔다고 했다(갈 3:23-25).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적 구원을 가져다 주는 분임을 믿기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은 이 점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책으로서 다음과 같이 강조되어 있다.

(1)믿음(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에게 와서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이 보내신 스승과 이적 행하는 자로서 인정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이것만으로서는 불순종함, 요 2:23-24), 성육신하신 하나님 -그의 속죄적인 죽음은 구원의 유일한 수단임(요 3:14-15, 6:51-58)- 으로 인정하는 것(요 20:28)을 함의한다.

(2)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영생을 현재에 누림을 확실히 보장해 준다(요 5:24, 17:3). 서신들에도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믿음이 훨씬 더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제시되어 있다. 바울은 기록하기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길이며, 이것은 인간의 행위로써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보라).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에는 믿음이 박해 중에 소망과 인내심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3> 여러가지 신앙관에 대한 역사적 고찰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적 증언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요서라고 간주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교의가 참으로 사도적인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양면성(자기들의 주장도 옳고, 사도적 증언도 옳다고 인정하는것)을 배려했다. 그러나 교부 시대에는 이러한 믿음의 개념이 더욱 협소해져서, 이러한 동의(사도적 증언에 대한)만이 기독교 신앙의 전적인 요소라고 간주되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들이 작용했다.

첫째로, 특별히 터툴리안(Tertullian)과 같은 반(反) 영지주의적 교부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작용했다. \'신자\'란 \'신앙규칙\' 즉 \'신조\'의 상태로 나타나 있는 신앙(tne faith)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둘째로,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의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영항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권위에 동의하는 것이란 단지 영적인 것들에 대한 그노시스(표현적 지식)에 비해 하위적 대용물이나 발디딤에 불과했다.

세째로, 그것은 성경적 도덕이 스토아적 도의주의- 이것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써의 윤리가 이니라 자신의 행위에 의존한 윤리임-와 유사한 데 기인했다.

네째로, 그것은 성경적 하나님과의 연합의 교리가 신(新)플라톤적인 옷을 입고 나타난 데 기인했다- 즉성경적인 연합의 교리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인하여 일상적인 신앙 생활과는 하등의 상관도 없이 순 이상적인 사랑(platonic love)에 의해서 달성된다는 초감각적인 신비적 사건으로 변모해 버렸다. 또한 신앙의 구원론적인 의의는, 칭의(해당 항목 참조)의 교리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되었고, 믿음(정통 혹은 전통으로 이해됨)은 단지 세례(과거의 죄를 모두 면제 받기 위한 입장권으로, 또는 교회에서 일생 동안 천국에 들어갈 수련을 쌓기 위한 허가증(즉, 수제자들에게 선행을 통해서 영광을 받을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는 허가장)으로 인정되었다.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다. 그들은 다시 신앙을 신용과 일치시켰고, 피데스 이포르미스(형식화되지 않은 신앙, 즉 순전한 정통)와 피데스 카리타테 포르마타(형식화된 신용(장)-이것은 사랑이라는 분명한 은혜가 이위에 초자연적으로 첨가됨으로써 실용적인 원리가 되었음)를 구별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이런 두 가지 형태의 신앙이란 공덕적(功德的)인 행위였다. 물론 피데스 인포르미스에 부여된 공덕(功德)의 특성은 콩그류엔트(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적인 보답)이고, 피데스 카리타테 포르마타만이 콘디그(신적인 보답을 공의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한 공덕이기는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지금도 신앙과 신용(장)을 공식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명백한 신앙(신앙의 대상을 알고 있는 신앙)과 암시적인 신앙(교회에서 주장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동의하는 신앙)을 구분함으로써 자기들의 주장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었다. 또한 평신도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이러한 암시적인 신앙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이것은 실제로 기독교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 할지라도 그저 교회의 가르침에 무조건적으로 동의(신뢰성)을표시하는 것에 불과함). 이처럼 신앙을 미온적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은 구원을 주는 신앙이라는 성경적 개념과는 전적으로 배치된다. 종교 개혁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성경적 관점들을 다시금 되찾았다. 즉 \"신앙이란 정통(전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피데스(신뢰성을 주는 것=역자 주)가 아니라 피두키아(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역자 주)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인격적으로 믿고 의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나 공덕에 의한 의(義)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인격적으로 믿고 의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나 공덕에 의한 의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값없이 선물로 받기에 적절한 도구(펼쳐진 빈 손과 같은) 신앙(믿음)은 하나님께 부여받는 것이며, 바로 이 믿음으로부터 선행과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이란 이교에서 보는 것처럼 신비적인 황홀경에 사로박히는 것이아니라 매일 구주와 더불어 생활해 나아가는 것이다\". 신앙 고백적인 개신교회들은 언제나 이상과 같은 입장들을 견지해 왔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에서는 신앙이 죄의 용서에 대한 기반이 되는 인간의 행위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인간의 행위가 자신의 구원에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인간의 공적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가 개신교 내에서 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自由主義)는 믿음을 심리학적으로 처리하여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한자(無限者)와 조화를 이루는 만족감이라고(Schleiermacher) 혹은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르기로한 단호한 결단이라고(Ritschl), 또는 이 양자를 합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지금은 다음과 같은 가정이 만연되어 있다. -\"믿음이란, 특정한 교리나 신조와는 상관없이 우주적이 우정(인간에)에 대한 낙관적인 신뢰로서 명백한 종교적 심리 상태이다\".

신초자연주의 신학자들과 실존주의 신학자들은 이상과 같은 심리학적 견해에 반대하고, 믿음(신앙)의 초자연적 기원과 초자연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믿음을 묘사하기를, 믿음이란 마음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하도록 반복적으로 촉구하는 데 대하여 인간이 반복적으로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내용에 대한 해설의 난해성(모호성) 때문에 때로는 신자가 무엇에 대해서 \'예\'라고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분명한 것은, 믿음(신앙)의 본질과 구원적 의의에 대한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는 그들의 성경관, 신관, 인간관 그리고 이것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10.신자와 성결한 생활(히 12:14-17)

 

[4] 성결한 자의 생활

 

21.법궤를 멤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하고 (대상15:12,14)

 

 

22.여호와 앞에 분향하며 섬기며 영원토록 그 이름을 받들어 축복함

대상23:13 (7을 보라).

 

 

23. 성전을 성결케 함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하기를 시작하여 그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하여 정월 십 륙일에 이르러 마치고 (대하 29:5,17).

 

 

24. 주를 섬김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눅1:75).

 

[5] 기타

 

25.사람은 하나님보다 성결할 수 없음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욥 4:17).

 

 

26. 성결을 욕되게 하는 자는 멸절될 것임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말2:11).

-깨끗케 함, 거룩, 결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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