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봐야 될 여러 이야기

[스크랩] 한국교회는 왜 카톨릭에 침묵하는가

한주랑 2012. 5. 28. 13:37

 

18 오후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 카치니 '아베마리아' 울려 퍼지자 기도하던 신자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노래를 부른 이의 복장이 이색적이었기 때문일까. 외국인 관광객들은 스마트폰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단상에 올라 구슬픈 아리아를 부른 주인공은 성악가 정율 스님(사진). 황토색 가사를 입은 스님과 성당 곳곳의 마리아 조각상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는 명동대성당 문화축제 기간인 오는 27 성당에서 특송을 부른다. 이날은 부처님오신날 하루 전이자 예수가 부활해 성령을 보냈다는 성령강림대축일이

"1988년부터 삼소음악회를 통해 종교 화합을 위한 음악을 해왔어요. 초파일에 추기경님이 조계종 본사에 오셔서 축하 말씀을 해주시는데 전날 제가 명동성당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런 자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스님이 성당 단상에 오른 법정 스님 유일하다. "부처님, 하느님, 마리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언어의 고정관념에 불과해요. 모든 성인들의 뜻은 같아요. 인간들이 선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는 20 넘게 종교 장벽을 허물기 위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 부모가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부모도 중요해요. 그런 마음으로 다른 종교를 포용해야 합니다."

그는 종종 빚어지는 종교 마찰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아빠는 불교, 엄마는 기독교, 아들은 이슬람교가 가능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그만큼 대한민국은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 특유의 심성과 관용 덕분에 가능한 같아요." 이날 리허설을 마친 그는 27 명동성당 교중미사에서 가곡 '향심' 성악곡 '아베마리아' 부른다.

한국경제|2012.05.18

 

 

내용은 일간지에 게제된 기사를 인용한 것인데

기사에 나온대로 스님이 성령강림절인 5 27 명동성당에서 아베마리아를 부른다는군요.

카톨릭의 종교다원주의적면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령강림일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을 말하는 것이죠.

예수께서 부활후 승천하실때 성령이 제자들에게 오실 것을 말씀하셨고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신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개신교는 날을 성령강림주일로 지정하여 기념하며

카톨릭에서도 기사에 나온대로 날을 성령강림대축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대축일에 스님을 초청하여 아베마리아를 부른다는 것은 너무 못된 것 아닙니까.

 

이건 카톨릭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무신론인 불교의 스님을 성당에 초청한다는 것도 그렇고

성령강림절에 마리아를 찬양하다니요.

마리아가 성령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마리아가 성령을 보내기라도 하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성인이라고 하는 위 기사에 나온 스님의 말은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입니다.

포용하고 존중하자면서 어찌 하나님을 사람으로 폄하할 수 있습니까.

만약 카톨릭의 하나님을 자기들이 믿는 부처와 같은 것으로 알고 한 말이라면

그것 또한 무례한 일이요 무식한 일입니다.

다른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에서 특송을 하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사람인지 신인지 사람인지 조차 모르고 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죠.

그런데 기독교의 신앙이 유일신 신앙이란 것은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다 아는것 아닙니까?

 

카톨릭이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그들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하면서

어찌 이런 일을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정치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 한국의 교회들이 일에 대하여 아무 언급이 없는 것도 이상합니다.

신천지에 대하여는 이단이라고 극렬히 비판하면서 (제가 신천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서는 침묵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믿음은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믿음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믿음은 자칫하면 변질되고 왜곡되기가 쉬우며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카톨릭의 이러한 모습이

관용과 포용이며 이해와 화평이라고 생각하여

이것에 미혹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유일신을 믿는 우리와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이 섞일 없습니다.

빵에 누룩을 자라게 하는 것이 관용과 포용일 수 없으며

빵과 누룩이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불교가 누룩이고

불교에서 볼 때는 우리가 누룩이겠죠.

 

불교는 그들의 교리가 있으니 그들 좋은 대로 길을 가면 것이며

우리에게는 예수께서 가신 길이 있으니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서로 누가 옳다 그르다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의 길이 옳다는 것을 행함으로 보여주면 것입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다간 후에 각자 받을 것이 있을 것이니

때보면 자기의 길이 옳은 길이었는지를 것입니다.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종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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