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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 (3장)

한주랑 2013. 6. 6. 18:11

* 3장 : 복음적 상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생

 

 

1. 중생은 복음적 상태에 꼭 필요합니다.

 

 1) 영혼은 은혜로 말미암은 중생으로 삽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79).

 

 2) 중생해야만 복음적 통치에 적합합니다.

  사람이 복음의 새로운 통치 질서를 준수하고 성실하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죄의 법에 순종하던 성향에서 고침을 받고 변화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p.80).

 

 3) 신생을 통해 택함이 굳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복음적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역사와 그 사람을 복음적 상태에 적합하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가 필수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p.81).

  만약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본래 고유한 가치를 그들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특별한 봉사를 수행하고 영적인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적합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특별한 백성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p.81∼82).

 

 4) 신생을 통해 의무와 특권이 유지됩니다.

  할례를 받으면 무조건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본성을 구비한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p.83).

 

 

2. 중생은 복음적 의무를 이행하는 데 필요합니다.

 

 1) 중생이 봉사를 수행할 준비를 갖추게 합니다.

  신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하나님을 섬길 그 어떤 준비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p.83).

 

 2) 중생을 통해야만 봉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복음적인 봉사는 의(義)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적인 봉사는 의의 결과이지 의의 원인이 아닙니다(p.85).

  (1) 어떠한 행동도 그것을 가능케 만드는 원리를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중생은 주로 복음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고, 칭의는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데 필요합니다(p.86).

  (2) 본성을 보면 필연적으로 그것의 열매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뿌리와 새로운 씨앗과 새로운 샘 근원을 가져야만 합니다. …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셔야 합니다(p.87).

 

 

3. 중생이 없는 자의 봉사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습니다.

 

 1) 중생이 없으면 신령한 순종도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본성에 속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받지도 아니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p.89). … 중생하지 않은 사람의 행동이 제아무리 영적인 행동과 흡사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리켜 영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반드시 우리 안에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가 선행되어야만 합니다(p.90).

 

 2) 중생이 없으면 생기 있는 순종도 없습니다.

  중생이 없으면 우리는 그 어떤 복음적인 의무도 생기 있게 이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p.91). … 사람에게 신체적인 죽음이 닥치면 신체적인 죽음은 몸의 모든 기능들을 무능력하게 만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죽음은 필연적으로 영적인 활동들을 무능력하게 만듭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은혜를 불어넣어 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영적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p.92).

 

3) 중생이 없으면 은혜로운 순종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의(義)의 원리를 따라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p.96).

 

 4) 중생이 없으면 자원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육신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역겨워하고, 율법은 육신이 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즉, 율법이 육적인 것으로 변하든지, 아니면 사람이 신령하게 변하든지 양단간에 하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p.99).

 

 5) 중생이 없으면 기쁜 순종도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 준행하기를 즐거워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주님의 율법뿐입니다(p.102).

 

 6) 중생이 없으면 진지함도 없습니다.

  (1) 새로운 본성이 없으면 신적인 동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2) 새로운 본성이 없으면 신적인 목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7) 중생이 없으면 겸손도 없습니다.

  복음적인 의무들은 마음에 유순함과 부드러움이 있어야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p.113). … 우리 영혼을 항상 부드러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상주(常住)해야 합니다(p.114).

 

 8) 중생이 없으면 지속성도 없습니다.

  팽이는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어떤 원리를 그 안에 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으면 빙빙 돌아갈 수 없습니다. 또 외부에서 주어지는 힘이 중단되면 돌아가던 팽이도 서서히 멈추게 됩니다(p.115).

 

 

(결 론) - p.117

 

 중생이 없으면, 복음적인 의무들을 …

 

 1. 영적인 방식으로 이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2. 생기있게 이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3. 은혜로운 방식으로 이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4. 자원하는 심령으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즐겁게 감당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 진심으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7. 겸손한 방식으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강퍅되기 때문입니다.

 

 8. 지속적으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변덕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안산)회복의교회
글쓴이 : (안산)회복의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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