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통기독교(이단)

[스크랩]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

한주랑 2015. 1. 6. 00:02

 

기독교와 불교에 대해서

 

불교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불교의 기원과 석가모니의 생애

불교는 힌두교와는 달리 그 창시자가 명확하다. 그 창시자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ha : B.C 5C)로서 고고학적 발견등을 통해 부처가 역사적인 실제 인물임이 밝혀졌는데, 그의 생활 환경에 대해 극히 적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허구임이 증명되고 있다.

(가) 부처의 초기 생애

'깨우친 사람' 부처는 B.C 566년 4월 8일 인도의 동북부에 위치한 카필라 바스투의 성주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났다. 그의 가계의 성씨는 고타마이며, 그의 이름은 싯다르타였다. 그는 인도의 왕의 아들로써 어머니 마야 부인은 출산 후 7일만에 별세하여 후모의 손에서 생모와 다름이 없는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그가 태어날 때 한 철인에 의해 예언을 듣게 되었는데 그 예언자는 장차 태어날 아기가 집에 머물러 있으면 위대한 왕이 될 것이지만, 만약 그가 집을 나간다면 그는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대 선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싯다르타를 왕궁에서 키우도록 했던 것이다.

마침내 결혼을 하고 아들도 낳게 되었지만 아직도 궁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 구경하기 위해 외출을 승낙맞고 여행을 하는 동안 그의 생애를 영원히 바꿔 놓게 한 '네 가지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사문유관이라 한다.

첫 번째, 동문유관 - 싯다르타가 본 첫 번째 고통스런 광경은 늙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한 노인이었다. 그가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그 노인은 늙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사람은 모두다 언젠가는 반드시 늙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남문유관 - 그는 고열로 허덕이는 병자를 만났는데, 그 병자는 모든 사람들은 질병을 피할수 없으며 그 병 때문에 자신처럼 고통을 받게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서문유관 - 시체를 화장시키기 위해 가는 장례식 행렬을 따라가며 비통하게 울고 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이 광경을 보게 된 싯다르타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고 물어 보자, 그는 곧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며 왕자든 거지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네 번째, 북문유관 - 그가 본 광경은 먹을 것을 구걸하는 한 승려의 모습이었다. 그 거지 승려의 얼굴에 나타난 평온한 모습을 보고 싯다르타는 이러한 삶이야말로 바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과 궁전을 떠나 구도의 길에 오르기로 결심하고서, 그날 밤에 길을 떠났다.

거지가 된 싯다르타는 이곳 저곳을 헤매며 세월을 보냈다. 힌두교 경전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적인 고행 생활도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한 그늘진 나무 그늘에 정착하여 깊은 명상에 잠기게 되었는데, 이 명상을 통하여 드디어 그는 대오 각성(大悟覺醒)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되었다.

(나) 부처의 대오 각성

그는 나무 밑에 칠일동안 앉아 명상을 하다가 대오 각성을 하게 되었는데 그 후 그 나무는 보리수, 또는 지혜의 나무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제 그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니고 부처로서 그가 깨달은 진리들을 인류에 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싯다르타가 깨달은 진리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참된 근원은 욕망, 즉 색()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일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모든 욕망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는 영적 평화를 누릴 수 있을것이며, 그러면 열반에로의 길이 열려질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싯다르타는 "불타(the Buddha)"라고 불려졌다. 불타는 '깨달은 자'란 뜻이다.

명상을 통하여 대오 각성한 그는 다시 고향인 가비라성으로 돌아가 부왕을 불법으로 설복시킬 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인 야소다는 최초의 비구니로, 아들인 라골라는 그의 제자로 모두 불문에 들어가게 했다. 그 후 그는 임종시까지 자신이 깨달은 해탈의 도를 북인도 모국 마가다 각지로 순회하면서 전파하여 많은 제자와 신도를 얻었고, 사원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전도로 얻은 제자 60명을 각처로 내어 보내어 그의 해탈인 도를 널리 전하게 했다. 그들을 내보내면서 "너희는 자비심으로 신들과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나아갈지어다. 둘이 한 길로 가지 말며 정도(正道)를 전파할 찌어다."라고부탁하였다.

(다) 부처의 죽음

모든 교훈을 다한 후에 그는 사라나무 아래서 타개하게 되었으니 B.C.47728일이었다. 그가 최후로 남긴 말은 "만상은 후패하나니 너희들은 마음을 경계하고 잘 지키며 근면하고 정진하여 법을 수행하라. 그리하면 생의 고해를 무사히 건너가리라." 고 하였다고 한다. 제자들이 많이 모여 그 시체를 화장한 후에 그 유골, 즉 사리를 왕사성과 카필라성과 비사리성등 여덟 나라 왕에게 나누어 보냈다.

 

2. 불교의 교리적 고찰

1). 불교의 신관

불교는 본래 무신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배의 신적 대상을 가르치지 않고 구제 사업에만 희생적 노력을 한 불타(싯다르타)가 스스로 예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브라만교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항의로 일어난 불교 자체가 오히려 우상 숭배로 발전한 것이다.

또한 불교는 인간 석가모니가 도달한 '불타'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이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수양과 노력으로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불교는 인간의 생로병사는 물론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요소들이 이 고뇌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임을 가르치며, 진리를 깨달은 자, 곧 불타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부처를 신으로 모시고 출발한 종교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요 인간이다. 따라서 불교는 인본주의 신앙이요, 아래서 위로 향하는 종교이므로 불교의 신관은 무신론이다.

 

2. 불교의 세계관

(가) 인생의 존재 양식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인생 문제를 가르친 교설은 사성체(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그의 인식에서 오는 행위 규범이다.

사성체, 즉 네 가지 거룩한 진리는 인간의 존재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신성한 첫 번째 진리는, 모든 번뇌와 고통이라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며, 죽는 것도 고통이며, 질병과 늙음도 고통이다. 뿐만 아니라 바라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며, 원하지 않는 것을 얻게되는 것도 또한 고통이다. 현실세계의 결과인 고성체(古聖體)이다.

두 번째 신성한 진리는, 번뇌의 원인에 대한 것인데, 번뇌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열망 때문에 생기며, 이 열망은 여기 저기에서 감각적 만족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추구한다. 또 번뇌는 금생과 내생에서 행복과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도 일어난다. 그 원인을 집성체라한다.

세 번째 신성한 진리는,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에 대한 진리인데, 사람들이 번뇌로부터 해탈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욕망을 포기하며 버리고,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게 된다. 이상 세계의 결과가 멸성체이다.

네 번째 신성한 진리는 팔정도에 의해서 인간이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정도란 무엇인가? 도성체라한다.

팔정도란 올바른 견해, 올바른 마음가짐,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명상, 그리고 올바른 자기 몰입을 말한다.

팔정도를 행하고 사성체를 이룰 때 인간은 비로소 쾌락과 고행에 치우치지 않고 괴로워 하지도 않는 자세에서 올바르게 현상을 파악하는 지혜를 깨우쳐 현상 경지인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팔정도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라고 하는 실천 원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세계의 존재 양식

불교 교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석가모니의 삼법인(三法因)은 불교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다.

서론- 일절개고 - 현실이 괴롭다는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원인에 의한 것이다. 세상에 생겨나는 것은 정상이 없고, 생겼다가 반드시 소멸되는 것, 즉 무상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나에 대한 확신을 타파하기 위하여 인간의 구성 요소를 육체 감각, 지각 표상, 의지 작용, 의식으로 분류한다. 이 다섯 가지 요소로 무아임을 증명하고, 나에 대한 확신도 무아임을 보이고, 나아가서 제법도 무아임을 증명한다.

열반적정- 무상을 깨닫는 것. 최고의 이상향. 열반은 불이 꺼진상태를 말하며, 적정은 폭풍이 지나가 버린 상태를 말한다.


3. 불교의 인간관

(가) 존재의 개념

1) 중론(中論)사상

세계의 모든 법은 자성(自性)이 부재하기에 공()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데, 이 공은 무와 동질성을 지니거나 동의 개념이 아니며, 다만 자성이 무조건적으로 생기(生起)하고 있는 물질, 세계의 실상을 표상한 것이다. 이 공은 비유와 비무(非無)의 중도로 이해하고자 하는데 까지 발전한다.

용수는 불교의 상투어들인 생(), (), (), (), (), (), (), () 등을 인간의 머리 속에서 구상해 낸 관념, 실상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희론으로 보고, 현상의 개념들은 우리가 공의 진리를 모르고 사물을 실재적으로 보는 습관에서 유래된 헛된 개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2) 이체(二諦)사상

석가모니가 말한 진체(眞諦)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써 언어를 초월한 공의 진리를 말하고, 속체(俗諦)란 속인들의 안목으로 보는 세계로서 곧 진리가 가리워진 모습을 뜻한것이다.

(나) 자아관

석가모니의 자아관은 삼원적이다.

첫째는 육체로서의 자아이며, 둘째로 초감각적인 자아로써 명상에 의해 끌어낸 자아이며, 세 번째는 정기(Ather)의 무한한 영역 속에 있는 형상 없는 자아이다. 석가모니에 있어서 진아는 본질상 무아와 일치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육체나 감각, 또는 이념 형식과 무의식적인 힘, 그리고 순수한 지성적인 인식과 관련되어진 것이라는 데서 전적으로 부정되어지고 있다.

(다) 인간관의 평가

불교의 인간관은 어떤 인격적이요 전능한 속성을 지닌 신의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십이연기의 기계적인 진행'을 거쳐 전생의 업에 대한 죄과에 따라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이 인생이 현상 세계에서 이룬 업은 그 인간의 다음 세계에서의 존재형태를 결정해 주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불교의 인생관이 염세 주의적이고 비관적이라는 말을 석가모니 당시부터 듣게 되었다.

 

4. 불교의 심관(心觀)

불교의 마음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에 비유된다. 석가모니는 "등은 형체를 나타낼 뿐 보는 것은 눈이요 등이 아님"을 말하면서 "눈은 대상을 비출뿐 보는 성품은 마음"이라고 가르쳤다. "모든 법은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인과와 세계와 티끌까지도 마음의 주관적 환영 이라는 것이 불교의 심관이다."


5. 불교의 윤리관

불교의 윤리관은 자력 주의이며 자력으로 극기하며, 도덕적 수련을 쌓는 것을 강조한다. (대승불교는 타력적인 면이 많음). 또한 인도교의 계급 주의를 극렬히 반대하면서 사람의 높고 낮음은 도덕적 품격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또한 자비는 불교에 있어 실천의 첫째 항목인데 석가모니는 모든 사람에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불심, 즉 대자비와 동정의 심리를 자비라 하였다.

그러나 불교의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해 소극적이고 유치한 단면들을 내포하고 있다. 바안리히에 의하면, 불교의 자는 전체 피조물에 대한 인간적 사랑이며,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의 관계가 결여되어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자아 중심적이고 염세적이며, 비관론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6. 불교의 구원관

석가모니의 영혼관은 전통적인 사상에서 탈피, 즉 영혼이 단독 존재성이나 영원불멸성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불교의 구원관은 점진적 구원으로써 행위, 즉 구도자 자신의 윤리적 수행에 의존되며, 부처나 보살 등의 타력적 구원의 가능성이 배제된다.

구원과 직결된 불교의 윤리 내용은 포덕(布德)으로써 오직 덕이 중시되고 덕을 가진 자는 그의 덕의 완전으로 명예를 얻게 되고, 덕에 완전한 자는 사후에 하늘나라의 복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오직 불교의 구원은 구원을 위한 자기의 투쟁인것이다.

또한 불교의 윤리는 고()와 관련된 윤리로써 바로 고로부터 해방되는 노력에서 구원의 첫 단계가 시작된다.

그리고 선정의 단계로써 명상을 통하여 세상에 유혹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묶어 두지 않으며, 세상에 빠지지도 아니하여 스스로 악의 쾌락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응축시켜 내면적인 순화에 몰두하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세 번째 단계로 지혜인데, 선정을 통해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을 얻게 되면 평소에 자신의 지혜에 감추어 있었던 일체의 비밀과 원인을 깨달을 수 있는 '()'의 단계가 이루어진다.

이 세 단계를 정리하면 첫 번째 고행에서는 전생의 출생을 소급해서 알게되는 것이요, 두 번째 선정은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법칙을 아는 것이요, 세 번째 지혜는 사성체를 발견하고 팔정도로 진입하는 것이다.

불교 구원의 완성은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이 이루어진데서 더 이상의 윤회가 없는 마지막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됨으로 가능해진다.


7. 불교의 종말(멸망)

(Dukkha;) -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인간 각자가 가진 자신의 몸이다. 즉 몸은 '괴로움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무명(Avidya) - 고통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써 무명은 모든 멸망에 가득 찬 현상들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오온(Paneu-Skandha) - (), (), (), (), ()을 말하며, 오온에 관련된 고통은 인간의 인격을 포함하여 현세적이고도 경험적인 총체적 세계안에 있는 모든 실재에 내재되어 있다.

(Karrma;) - 십이연기는 원초적인 선인(先因)으로써 무명에서 업을 형성하는 충동력()-의식-정신적이요, 육체적인 개체성(명색)-여섯개의 감각()-업의 생산()-윤회-늙음과 죽음으로 되며, 여기에서 지금까지 제기된 고의 원인, 즉 불교에서 말한 멸망의 원인에 대한 물음에 답이 주어진다.

멸망과 관련된 네 분류의 인간상

(가) 저급한 현존재로 태어난 자들로 암흑에서 또 다른 암흑으로 끝없이 방황하는 자들

(나) 똑같이 저급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선의 존재로 변화되어 밝은 존재로 도달되는 자들

(다) 밝은 존재로 태어났지만 그 안에서 악성으로 변화되면서 다시 어둡게 태어나게 되는 자들

(라) 밝은 존재로 태어나 성실하게 그리고 계속 선하게 변화되어 빛에서 빛으로 이르게 되는 자들


8. 불교의 계율

평신도들은 현실적 삶 속에서 종교적인 임무를 수행해 나감으로써 공적을 쌓을 수 있는데, 불교 학자들은 그들이 종교적인 공적을 쌓을 수 있도록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가) 신도들은 다섯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최소한도 그것들 중 몇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2주간 동안에는 그 외 다른 3가지 계율을 더 지켜야 하는데, 첫째 세속적인 즐거움을 피하기 위해 단식을 하며, 둘째 고약을 바르지 말고, 셋째 장식품을 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부 신도들은 다른 두 가지 계율들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은 높고 커다란 침대에서 잠자지 않으며, 금이나 은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나) 신도들은 불교의 삼보와 왕족과도 같은 고귀한 신앙에 귀의해야 한다. 불교의 삼보는 다른 신을 믿는 것을 용납하며 카스트 제도나 조상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것을 인정한다.

(다) 신도들은 공양을 드려야 하는데, 특히 승려들에게는 그들이 생계를 이어가기에 충분한 공양을 드려야 한다. 또한 사람이 거하지 않더라도 불교 의식상으로도 필요한 사찰을 지을수 있도록 공양을 드려야 한다.

(라) 신도들은 부처의 유골을 숭배해도 좋다. 그런데 불교도들이 부처의 치아와 사리를 숭배하는 것을 부처에게 기도 드리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부처는 이미 이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열반에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는 모든 신도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1)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죽이지 말라.

(2) 도둑질하지 말라.

(3) 간음하지 말라.

(4) 거짓말하지 말 것.

(5) 취하게 하는 술이나 마약 등을 마시지 말 것.

또 불교의 승려와 비구니들에게만 적용되는 계율들이 있다.

(6) 음식은 지정된 시간에 알맞게 먹을 것.

(7) 감각을 자극하는 일은 피할 것.

(8) 장식이 화려한 옷을 입지 말고 향수를 사용하지 말 것.

(9) 사치스러운 침대에서 잠자지 말 것.

(10) 금이나 은을 취하지 말 것.

 

9. 불교의 조류(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불교에는 두 큰 조류 즉 파가 있으니 소승(Hina-yana)과 대승(Mahayana)이다. 승이란 말은 운반, 운재의 뜻으로 불교를 '열반'의 저편 언덕에 실어다 주는 '타는 물건'에 비겨서 되어진 술어이다.

초기의 불교는 그 영역이 인도에만 국한되었었는데, 이 시기의 불교는 보통 소승 불교라고 불리워졌다. 그러나 후기의 불교는 인도를 비롯한 다른 나라, 특히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널리 대중성을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후기 불교는 대승불교라고 불리워졌다. 소승은 해탈을 얻기 어려워서 귀족적으로 소수의 사람에 국한하는 것인 반면에, 해탈을 받아 구원을 얻기가 비교적 쉬워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을 대승이라고 한다.

첫째로 소승의 목적은 아라한-번뇌를 다 없애고 고상한 지혜를 얻어 세상 사람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이 되어서 자기 일신의 해탈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하지만 대승의 목적은 무상의 불과를 얻어 자기가 해탈되는 동시에 널리 다수의 인간을 제도함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승은 개인주의이요, 대승은 대중주의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소승은 도를 닦는 방법으로 석가의 언행을 연구하며 모방하기에 노력을 힘썼지만 대승은 석가의 인격에 파고 들어가서 그 정신을 실현하기에 최대의 노력을 한다. 그러면 소승은 형식주의, 표면주의에 가깝고 대승은 실질주의, 정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소승은 개인적 해탈을 이상으로 삼기 때문에 독선사상에 빠지기 쉽고, 대승은 일반적 해탈을 이상으로 삼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사람이 서로 제휴하고 서로에 협조하여 불교의 이상적 사회인 정토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런 견지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소승은 개인주의, 보수주의, 전통주의인 반면에 대승은 보편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1

교주:석가모니(실재인물)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가공인물)

2

시기:B.C.500년경

B.C.100년경

3

개인주의(승려중심)

만인주의(평신도 중심)

4

보수주의

자유주의

5

근본주의, 정통주의

개혁주의, 비정통주의

6

수행주의

생활주의

7

무의식주의(명상을 강조)

의식주의(염불이나 주문을 강조)

8

지혜를 강조(이론을 강조)

자비심을 강조(행함을 강조)

9

부처는 인간이다(:석가모니)

부처는 신이다(:아미타)

10

자력신앙(수행을 강조)

인간은 우주에서 자기 자신밖에 없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해탈에 이른다.

타력신앙(믿음을 강조)

사람은 혼자가 아니며, 자비로운 은총에 의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11

기도문이란 있을수 없다.

(명상위주)

기도문이나 주문을 많이 외운다.

(예: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12

개인 열반이 목적(깨달음)

사람은 개개로 분리된 개인임

중생제도가 목적(구원)

사람은 타인과 관련된 존재임

13

철학적(무신론)

종교적(유신론)

14

경전:아함경

경전:반야경,법화경,아미타경,화엄경,금강경,관음경,8만대장경등

15

남쪽:태국,스리랑카,캄보디아

북쪽:중국,한국,일본

16

귀족적,소극적,사회적

대중적,적극적,박해주의적


3. 용어 이해

부처(Buddha)-'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란 뜻.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주어진 것으로, 그가 대오 각성한후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사람도 사성체의 가르침을 따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이 칭호를 얻을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내세구원)-'나는 아미타 부처님을 의지합니다. 나는 아미타 부처님을 믿습니다. 나는 극락 가기를 원합니다.'의 뜻(나무:의지하다. 아미타불:아미타경에 나오는 가공 인물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 극락 간다고 말한 부처)

나무관세음보살(현세축복)-'나는 관세음보살을 의지합니다(믿습니다).나는 축복받기를 원합니다.'(관세음보살:관음경에 나오는 가공 인물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 그 공덕으로 축복을 받는다고 말한 자비의 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나는 내세 구원과 현세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보살- 보리살타의 준말로 보리(깨달음)+살타(중생). 즉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부처의 다음가는 성인. 현세에서 중생을 가르치는 사람. 나이 많은 여신도를 대접하는 말로, 요즘은 모든 여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비구니- 걸식하는 사람으로, 남자 승려를 '비구', 여자 승려를 '비구니'라고 부른다.

사미니-20세 이하의 어린중. 불문에 갓들어간 예비 승려

108번뇌- 신체의 모든 감각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슬픔이 36종인데, 그것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대로 나누어 합하면 108번뇌가 된다. 그래서 절을 108번 하면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라마교- A.D.7C경 티벳에서 생겨난 불교의 한 분파로서 불교의 교리들과 티벳의 마술적인 신앙이 결합된 것이다. 라마교의 승려들은 모두 라마스로 불리고 그 승려들 중 우두머리는 달라이 라마로 불린다.

정토종- 정토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사상으로, 부처의 광대무변한 은총의 빛에 대한 믿음(나무아미타불)을 강조한다. 또한 그의 가르침은 극락세계의 정토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을 되풀이 함으로 쉽게 열반의 경지에 이를수 있다고 강조한다.


4.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유사점

그리스도교

불 교

1

유대교를 개혁한 것

브라만교를 개혁한 것

2

모든 제사와 절기 지키던 것을 폐지함

신에게 희생으로 제사하는 것을 엄금함

3

예수가 제사장 자격있는 레위인이 아니요 왕손인 유다 지파에서 탄생함.

교조 석가모니가 종교적인 브라만인이 아니요 왕족 크샤드리아에 속함

4

금식 후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 당하였으나 승리함.

성불(금식)할 때 마왕에게 세가지 유혹을 받았으나 이김.

5

유대교의 십계명을 받아 그대로 지키게 함.

브라만교의 계율을 개정하여 십계를 가르침.

6

신자들로 교회를 조직함.

승려들로 교단을 성립함.

7

카톨릭에서는 로마시에 교황이 있어 전세계의 교도들을 통치함.

불교가 티벳에 들어가 세운 라마교회에서는 활불을 법왕으로 봉사함.

8

카톨릭에서는 기도할 때 염주를 사용.

경배하여 주문 외울 때 염주 사용.

9

신에게 성부,성자,성령의 삼위가 있음.

불신에 법신,보신,응신의 삼신이 있음.

10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신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한 의미로 십자가를 휘장으로 함.

불신의 만덕원만상을 표시하는 부호로 만()자라고 칭하는 (절마크)사용.

11

성당을 장엄하게 지으며, 종을 울림.

사찰을 장엄하게 지으며, 범종을 울림.

 

5.그리스도와 불교의 차이점

그리스도교

불 교

1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은 신이 자기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것임.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다 공()이라고 봄.

2

신을 우주의 창조자와 섭리자로 섬김.

신은 없고 우주는 성, , 괴공으로 순환함.

3

인간은 한 번 나서 죽기까지의 일생에 행한대로 내세에서 상급이나 형벌을 받음.

중생은 해탈,불타가 되기까지는 항상 십이인연으로 윤회함.

4

사람은 육신과 영혼이 합하여 된 것으로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죽음.

사람은 오온으로 되어 있으며 오온이 분산되면 죽음.

5

영혼은 죽지 않음.

영혼은 없음.

6

믿음,소망,사랑이 신자 생활의 세 큰 덕행임.

사성체와 팔정도가 교의의 중심이 됨.

7

사람은 죄에서 구원받기를 힘씀.

()에서 해탈받기를 힘씀.

8

사람이 구원 얻는 것은 오직 신의 긍휼과 은혜뿐이요, 만세전에 예정하심이다.

사람은 해탈하여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나, 그냥 윤회하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9

그리스도의 성격은 낙관적임.

석가모니의 성격은 비관적임.

10

신의 아들이란 자격으로 출발함.

6년동안 고행 끝에 성불함.

11

전도하기 시작한후 3년동안 짧은 기간에 설교하고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

정각을 얻어 성불한 후에 40여년 동안 각지로 다니면서 많은 설법을 함.

12

죽어 장사한 지 3일만에 부활하여 40일간 나타나 보이다가 승천하심.

불타가 입멸한 후에 그 시체는 화장되고 사리는 큰 절에 분배됨.

 

기독교와 불교의 비교

1.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의 특색-부처('석존'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의 가르침의 종교이다.

부처(석존을 포함한 모든 부처의 보통명사)가 되기 위한 종교이다.

불교와 기독교를 구별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격: 인간에 대한 해석의 차이.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절대적인 신에게 의존적인 바탕에 둔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자아 밖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다.(철저한 자각의 종교)

(1) 불교는 무신론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천지와 인간의 창조자며 유일한 최고 존재자. 절대적 존재 그러므로 유신론이다.

불교의 부처: 창시자 석존을 중심으로 한 종교이지만 신을 부정한다. 부처는 속죄자도 아니고 심판자도 아니다. 신과 인간사이의 중재자도 아니다.

불교는 공사상과 연기설의 주장이므로 일체존재의 상대성 앞에 여하한 인격적 또는 추상적 절대자도 있을 수 없다.

(2)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기독교: 신에 대한 절대 의존적 종교

불교: 인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된 존재일수가 없다는 것.

경전에 나타난 불교사상의 본질은 마음 가운데 집착이 없는 해탈의 경지이다. 자신을 내어던져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의 생활을 말한다.

석가는 자라고 공부하고 노력하여 부처가 된것이며 이처럼 추종자들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노력,행위,깨달음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귀의하는 것이다.

3) 불교는 인간학이다.

불교는 왜 모든 인간삶에 고통이 생겼는가?

이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분석하는 판단으로부터 시작한다.

분석의 핵심은 인간이 사물에 고착되어 그것을 가지려고 인간의 욕망을 갖거나 아집을 갖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착과 집착에서 물러날 때, 얽매인 아집에서 해방 받을 때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집착에서 얻은 해탈이다.

4) 불교는 무존재론이다.

아니불()+사람인()=부처불() 부처불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닌존재임.

사물이든 자아이든 모든 현상을 본체가 없이 변화된것에 불과하다. 즉 모든 현상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사물에 집착하여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현실관이다.

윤회의 세계로부터 떠남으로써 두 번 다시 윤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이상인 것이다.

생사세계에서 탈출이 해탈이다. 즉 윤회의 세계와 연결지어진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탈출하는 것을 뜻한다.

 

2. 불교의 십중대계와 십계명

불교의 십중대계

기독교의 십계명

1

중생(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죽이지 말라.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2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지 말며

3

음행하지 말라.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며

4

거짓말하지 말라.

안식일을 성일로 거룩하게 지킬 것

5

술을 팔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7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8

제것을 아끼려고 남에게 욕하지 말라.

도덕직하지 말라.

9

성내지 말고 참회를 잘 받으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삼보(부처,부처의설법,스님)를 비방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3. 윤회와 부활

불교의 윤회

기독교의 부활

왕문경에 의하면 인간은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도(사람),천국(극락)으로 윤회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사람이 죽으면 다른 세계에서 다른 형태로 태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살아 생전에 지은 행위에 따라 6가지 길 또는 세계가 있다.

악업의 결과

지옥:고통의 세계

아귀:배고픔의 세계

축생:짐승,벌레의 세계

선업의 결과-

아수라:싸움귀신의 세계

인도:사람의 세계

천상:하늘의 세계

이스라엘의 구속에 대한 벅찬기대를 가진 제자들에게 예수의 죽음은 그들 소망의 종말이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다시 보고 음성을 듣고 만지고 함께 먹으며 그의 인격을 확인했을 때 그들의 좌절은 갑자기 확신과 믿음으로 바뀌었다.

예수의 부활은 종말에 있을 성도 부활의 첫열매를 의미한다.

이 부활은 육체의 부활임을 빈무덤을 통해 복음서들은 증거한다.

예수의 부활은 사람들에게 장래의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든든하게 약속해 줄뿐만 아니라 그것은 종말론적인 부활자체의 시작인것이다.

 

4. 고와 죄

불교의 고

기독교의 죄

불교는 고의 문제를 해결하여 부처가 된다. 고의 원인은 번뇌에 있다.(욕망)

8고(일체개고인,원중회고,이별애고,구불득고,오옴성고,생고,사고,노고,병고)

5(,,,,)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다.

오온의 화합된 존재는 자성이지만 실체가 없어서 아()인데 인간은 제법무아로 보지 않고 자성있는 실체로 아집하므로 괴로움이 온다는 것이다.

불교는 열반의 종교이다.

즉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 무상함을 벗어난 상태, 불길이 소멸된 상태에 이르면 괴로움의 문제에서 벗어난다.

기독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구원을 선포한다.

기독교는 죄의 결과로 오는 고통을 다룬다.

죄로 인해 방랑하는 인생됨(민14:34)

멸망의 운명이 됨(창19:1-5)

죽음의 구속이 됨(겔18:2-4)

죄의 삶은 사망이 됨.

그러나 기독교는 죄의 결과로 오는 고통의 문제 해결로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화목을 믿는다.(요일2:2)

욕망의 소멸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만족을 계획한다.

그것은 생명의 완성(죽음없는 천국)인 것이다.

 

 

5. 열반과 천국

불교의 열반

기독교의 천국

열반이란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윤회 전생을 하지 않은 세계 즉 부처가 되어서 전생과 인연세계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석가가 인간 탐구에서 얻은 결론은 "존재와 고통은 하나"라는 것이었다

즉 인간생사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불교의 열반은 무존재론을 의미한다. 생사가 없는 무생무사적멸이다.

비관적이다.

정지적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곳은 인간의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창조주와 교제하는 곳이요, 세상 모든 고통과 눈물이 없는 곳이며 찬송과 감사로 즐겁게 사는 곳이다.

이는 마음속에 예수를 모시고 통치를 받는다면 현재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다가올 미래에 완성될 천국의 부분일 뿐이다.

불교와 같이 무나 공으로 적멸하지 않는다. "나는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 나를 믿으면 영생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낙관적이며 활동적인 하늘나라이다.

 

6. 해탈과 구원

불교의 해탈

기독교의 구원

불교의 목적은 열반인데 이는 해탈을 전제한다.

불교의 출발은 윤회의 세계로부터 탈출(해탈)하는 것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윤회사상을 개혁하였다. 천계(극락)에 태어날지라도 그 쾌락은 영원히 계속되지 못하고 오히려 천계를 떠날때의 고통은 지옥고통의 16배이므로 윤회세계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원했다. 이것이 불교의 이상인 것이다.

해탈이란 윤회의 세계와 연결되어진 속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불교가 지향하는 목적이지만 해탈은 결국 생사 세계에서 벗어나는 무생무사인 것이다.

불교의 수행 근본 목적은 견성(마음을 깨달아 증득하는 것)하는데 있다.

 

기독교의 궁극적 목적은 천국인데 구원을 받아야 한다.

믿음으로의 구원인 것이다.

구원이란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고 멸망받을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3:23)죄의 삯은 사망이며(6:23)죄의 결과로 심판과 형벌인데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됨(16:31)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하신것이다.(5:9)구원은 과거의 구원(소명,중생,회심,칭의,양자됨)과 현재의 구원(성화,견인)이 있으며 미래의 구원(영화)로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육체가 부활하여 영원히 죽지아니할 새 몸을 입을때의 완전한 영화 상태에 이르러 그 성취를 보게 된다.

 

 

출처 : 야곱의 우물
글쓴이 : 향유내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