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처럼 인생에도 조율이 필수 - 문단열
악기처럼 인생에도 조율이 필수 - 문단열
어린 시절 생전 처음으로 클래식 현악 사중주를 보러 갔을 때였습니다. 연미복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단원들이 나와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자기 자신의 악기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응? 저건 뭐지?' 싶은 불협화음을 들으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머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조율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주를 앞두고 악기의 늘어진 줄을 정확한 음정 기준에 맞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줄 달린 악기라면 바이올린이든 기타든 할 것 없이 연주 직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음정을 맞추고 연주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학예회에 나온 학생이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든 예외가 없습니다. 조율 없이는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율을 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구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색상이 아무리 몽환적으로 아름답다 해도 초점이 흐린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린 사진도 있지 않냐고요? 그 사진조차도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맞춘, 그러니까 조율한 사진이란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붓글씨를 쓰려면 깨끗하게 먹을 갈아야 하고 유화를 그리려면 팔레트를 깔끔히 씻어야 합니다. 그 어떤 예술가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사전 조율 작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율이 없어서는 안 될 지상 최고의 종합예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입니다.
학교에는 시간표를 보고 책가방을 싸서 갑니다. 악기는 연주 전 조율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삶에 있어서는 '정확한 기준음정에 나를 맞추는' 조율을 잊고 살아갑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보면 연주 사이사이에 조금만 소리가 이상하다 싶으면 현의 음정을 다시 맞춥니다. 기타리스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늘어지지 않는 최첨단 줄은 발명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순간 늘어지는 인생의 줄을 전혀 맞추지 않고 한 달을 보내고 일 년을 보냅니다. 기껏해야 연말연시에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게 다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악기 줄을 한 해에 한 번 맞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습지 않습니까? 조율 없는 인생은 엉망인 인생입니다. 당신의 표현력이 아무리 절묘해도, 당신의 악기가 수십 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라 해도 줄 풀린 연주는 실패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율은 하지 않고 연주 기교만 익히고 명품 악기만 찾습니다. 조율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 문단열의 단열단상(斷想)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