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요강

마태복음(3)

한주랑 2013. 1. 4. 11:07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합니다-1

 

각 복음서의 구조와 내용의 차이는 주제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와 출생기사도 마태와 누가복음에는 있지만 마가와 요한복음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마태의 기록을 누가의 기록과 대조해 보면 마태의 강조점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복음의 사실에 대해서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를

근원부터 차례대로 기록하여 이미 들어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합니다.

기쁜 소식의 근원은 성전에서 제사장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해서

불임인 늙은 그의 아내에게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할 선구자 요한을 잉태케 하셨으며

처녀의 태에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케 하셨습니다.

새로운 잉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이며

그의 말씀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의 일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시작입니다.

 

마태는 ‘그리스도 예수의 계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록함으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계보도 왕통과 혈통으로 마태와 누가가 달랐던 것처럼 출생의 기사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다…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로 시작해서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했으며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했다’로 끝냅니다.

가운데 설명문으로

아내를 데려오고 낳은 아들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천사의 명령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임마누엘 언약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습니다.

주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나심’이며 죄에서 구원하는 임마누엘이신 예수가 중심내용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된 의미를 말씀드리고 다음 시간에 예수의 구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의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누가복음의 병행구절과 비교하겠습니다.

눅1:35-36입니다.

“처녀 마리아에게 이르시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 아들을 베었나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누가는 늙은 불임여성 엘리사벳과 처녀 마리아의 잉태를 연결지으며,

이 일을 행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성령의 능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기에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사장 아내의 불임은 제사장 가문의 죽음이며 그 나라의 죽음입니다.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불임 제사장 아내의 태에 복음의 선구자를 잉태케 하시고

처녀의 태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실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케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서 불임은 늙은 여인과 같고 처녀의 태는 아담을 창조하신 새 창조의 흙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왕국을 시작하실 때에

아무 것도 없는 태초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어 하나님의 상속자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녀의 태에 성령이 임하게 하시고

능력으로 새 인류의 머리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지으심으로

옛 언약역사를 완성하시고 새 창조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머리이신 교회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출생한 새로운 인류입니다.

성령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것이 누가의 설명입니다.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을 해석한 이유는

마태의 단순한 출생기록을 누가의 자세하고 긴 출생기록으로 보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차이점에서 마태의 강조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본문은 그 책의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다른 책의 병행구절은 참고사항입니다.

서로 보충해서 조화시키면 문맥의 의미는 사라지고 각 책의 완전한 영감은 훼손됩니다.

또한

교회는 사도들로부터 신약성경에 기록된 복음을 전승받았기 때문에

기록된 대로 언약문건을 해석해야 하며 기록의 원전과 편집을 구분할 권리가 없습니다.

 

마태는 마리아가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기록합니다.

마태는 성령의 잉태를 누가처럼 잉태케 하는 성령의 능력과 연관시키지 않고 잉태와 무관한 동거 전과 상관시키며,

성령의 잉태가 사람과 무관한 성령의 사역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에 이르면

정통조직신학은 구원자는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아담의 원죄와 무관하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인간 아버지 없이 출생했으며 마리아에게서는 인격화되지 않은 무죄한 인성을 입었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의미가 아니며 본문의 의미도 아닙니다.

 

끝말은 시작 말과 상응하는데

‘천사의 명령대로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고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 했다’가 끝말입니다.

끝말은 마리아의 태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마리아의 태에서 나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고 함께 계신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이십니다.

끝맺는 말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기까지

마리아의 태가 동침으로 더렵혀지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새것을 사용하시며 또한 그것은 거룩하며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임마누엘이신 예수께서

마리아의 태를 성소 삼아 자기 백성과 함께 계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이스라엘을 상속하고 완성한 천국인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신 일입니다.

 

또한

가운데 설명문에서는 동거 전의 잉태를 처녀 잉태로 설명합니다.

누가는 처녀 잉태를 성령의 능력에 의한 새 생명의 출생으로 설명하지만,

마태는 처녀 잉태를 임마누엘 예언의 성취로 설명합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의 처녀 탄생 약속은 사7:14에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문맥은 직접적인 메시야 예언이 아니라

임박한 국가의 위기에서 나라가 망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의 징조입니다.

국가의 위기 시에도 왕위를 이을 왕자를 젊은 여자에게서 출생케 하시고

그 아이가 장성할 때쯤에는 유다가 회복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을 주심으로

그 이름대로 자기 백성과 대대로 함께 계시며 그 왕위가 끊어지지 않게 하실 것을 확증하셨습니다.

 

다윗 왕조는 임마누엘의 왕조여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옛 성소가 불타 없어지고

그 왕조가 언약의 땅 밖으로 포로되어 갔지만 끊어지지 않았으며,

그 왕위를 영원케 하실 후손을 나시게 하시어 임마누엘의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의 이름은

예수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신데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땅의 성소와 혈통을 따른 임마누엘의 왕조는 망했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의 태에서 나신 임마누엘의 나라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대권을 주신 아들의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교회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하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며 만국이 그의 성소가 되도록 통치하십니다.

세상 나라와 사탄과 음부의 권세가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는 교회를 결코 해할 수 없습니다.

아멘!                               

 

                   -김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