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요강

마태복음(4)

한주랑 2013. 1. 4. 11:0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합니다-(4)

 

예수님의 출생 기사의 내용은 동거 전 성령 잉태와 예수님의 이름과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태를 성전 삼으시어 나시었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오늘은 예수의 이름과 사역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의 이름은 이름대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으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시는데

그 이름대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언약의 확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주신 백성은 주신 이름대로 하나님을 누리며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름을 주는 것은 이름을 준 권세자의 축복입니다.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세계와 그의 종들에게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실 때에는 그 이름대로 복을 주시며 그를 통해서 그 이름대로 일하시겠다는 언약의 확증입니다.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 이름을 주신 것은

만물이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신 대로 세세토록 붙드신다는 확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앞으로 모든 생물을 인도하시고 그로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상속자임을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첫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서 지어주신 배필을 여자라고 불러 남자와 동일함을 확증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남자와 여자는 글자는 같고 발음만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역사를 진행하실 때에

그의 종들에게 이름을 주시며 주신 이름대로 복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주신 이름대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실 때에

아브람과 사래에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주시어 열국의 아비와 어미가 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브라함의 육체의 후손인 이스마엘을 들으시고

그로 하여금 강력한 국가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출생에 있어서 죽은 자인 사라의 태에서 아브라함의 상속자 이삭을 출생케 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의 12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언약의 땅을 상속하여 하나님의 왕자로서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자 여디디야로 부르시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집을 짓게 하심으로

다윗 왕조를 하나님의 나라로 영원히 견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선구자에게 요한의 이름을 주시어 끝 날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되게 하셨으며,

처녀 마리아의 태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아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주시어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게 하시고

다윗의 나라를 천국으로 구원하시어 평강과 정의로 모든 민족을 세세토록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그의 종들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역사이며,

그의 종들에게 자기 이름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의 역사입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이름을 알려 줄 때에

누가복음에서는 이름의 의미 설명 없이 예수님의 신분과 영광을 설명하여

예수님께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다윗의 왕좌에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을 말씀합니다(눅1:31-33).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근원부터 차례대로 구원역사의 완성과 기쁜 소식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이름과 사역을 설명합니다.

마태복음은 천국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가 세우신 천국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임이라’에서

‘그가 구원하신다’는 예수의 이름의 문자적 설명이며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합니다.

 

예수의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름은 여호수아(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와 예수아(그가 구원하시리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이스라엘 중에서 예수는 흔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안식을 준 여호수아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을 지은 대제사장 여호수아 두 사람은 구원역사에서 예수님의 전형입니다.

 

이 문단에서 그리고 마태복음 전체에서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그의 백성은 선지자의 구원약속을 가진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죄는 율법을 범한 것이며 그 결과 이방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에 포로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는 종말의 구원자이며 다윗의 후손 왕이시고

하나님의 대권으로 모든 민족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선지자들이 말한 하나님의 구원언약이며 마태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한 구원언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된 남은 자들을 언약의 땅으로 데리고 오실 때에

물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새 언약을 맺으셔서 새로운 다윗 왕을 주시면

그들이 다시는 범죄 하지 않을 것이며 땅은 낙원이 될 것이고 모든 민족이 그들의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치 않으시고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가 강같이 흐를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신다고 인용한 사7:14은 이사야서의 문맥에서는

직접 메시야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국가 멸망의 위기 시에 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징조로

왕의 젊은 아내가 낳은 왕자의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부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앗수르에게 모든 나라들이 망할 때에 임마누엘의 약속을 받은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나라는 임마누엘의 왕조입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하여 범죄하자 그 나라가 바벨론에 포로될 것을 말씀하시고

끝 날에 평강의 왕의 출생으로 영원한 평강의 왕국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사9:1-7).

그러므로

인용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이시며 그 언약을 성취하셨다는 메시야 성취인용입니다.

다윗의 후손 요셉의 아내인 처녀 마리아의 태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임마누엘이시며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자 예수님입니다.

 

또한

마태는 언약백성의 언어인 임마누엘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언약을 모든 이방 사람이 듣게 합니다.

이러한 번역이 가능한 것은

이스라엘의 끝 날의 구원자이신 천국의 왕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시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의로운 요셉은 율법을 두려워했습니다.

동거 전 잉태는 죽음입니다(신22:23-).

그러므로

요셉은 가만히 마리아와의 혼인 관계를 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입에서 율법에 의해 저주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소식을 들은 요셉은

두려워하지 않고 마리아를 데려 오고 그녀의 태를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사생자는 십대까지 하나님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신23:2).

그러나

요셉의 믿음과 순종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아는 대로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의 후손이시며 끝 날의 천국 왕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들을 낳자 하나님께서 부르신 대로 요셉도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요셉의 아내 마라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 요셉을 율법의 저주에서 천국에로 구원하신 임마누엘이십니다.

복음에 참여한 사람들은 복음과 함께 기억되고 전파됩니다.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로 그가 천국의 왕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아는 대로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의 후손이십니다. 아멘!

 

                                                                         김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