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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Why] 가족 病수발 21년… 그녀의 `10개월 희망`은 끝내 죽음으로
한주랑
2013. 9. 7. 14:24
입력 : 2013.04.27 03:12 | 수정 : 2013.04.27 11:58
작년 자살하려다 맘 바꾼 그녀
장애 아들, 치매 시어머니… 너무 힘들어 동반자살 시도
희망이 되고 싶다며 재기
결국엔… 최근 자살한 그녀
후원금으로도 빠듯한 삶, 시어머니 치매 날로 악화
본인도 척추통증과 우울증… 지난달 기자 만나 "고맙다"
가족의 짐 너무 무거웠던 그녀
병은 돈 잡아먹는 귀신, 시어머니 시골 내려보내고 내가 버린것 같다며 자책
사회가 더 도와줬다면… 유언처럼 그 말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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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살 시도 6개월 만인 올 1월 초 서울 천호동 자택에서 A씨 가족이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 본지 1월 9일자‘자살 시도자 10명 인터뷰’기사에도 실렸다. 당시 A씨는“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라”며“자살 시도 후 가족과 나를 아껴주는 사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었다.
10개월 전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지난해 6월. 그는 시어머니, 아들과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 첫 번째 자살 시도였다. 금전 문제로 고민하다가 "나 없으면 시어머니와 아들을 누가 거두겠나" 싶어 같이 죽기로 했다. 시어머니(70)는 18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고 스물한 살 아들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수면제를 먹고 연탄불을 피웠지만, 살기로 마음을 바꿨다. "자살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던 그를 다시 죽음으로 내몬 '무거운 짐'은 무엇이었을까?
◇"장애인은 안돼"… 집 구하는 일은 '전쟁'
A씨는 지난해 자살 시도 직후 법정에 섰다. 혐의는 '존속살해미수'였다. 법정에서 그는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전세금 3000만원을 내고 살던 서울 길동 집이 지난해 재개발됐다. 집을 비워줘야 했다. "임대주택이 월세가 싸다"는 말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다. 구청에선 "친정어머니 앞으로 예금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오빠가 재산을 어머니 통장으로 돌려놨던 것이다. 어머니와 오빠에게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재산 소유주를 바꿔달라"고 애원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전세나 월세 집을 구하러 가면 "중증장애인에게는 세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집 구하는 일은 항상 '전쟁'이었다. 휠체어 탄 아들 때문에 월세가 싼 반지하 방이나 옥탑방은 엄두도 못 냈다. 이런 금전적 압박이 A씨를 자살로 내몰았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아들은 "어머니가 처벌되길 원하느냐"고 물으니 왼손을 크게 저었다. "아니다"라는 의미였다. 그는 "어머니 없이 살 수 있느냐"는 말에 온몸을 흔들었다. A씨의 사정을 감안해 집행유예가 나왔다.
◇"돈 잡아먹는 귀신, 병"… 상담은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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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자와 만난 A씨는“가족처럼 대해줘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삶이 늘 어두웠던 건 아니다. 결혼 초기인 1990년 초만 해도 행복했다. 경기가 좋아 남편의 건설업이 잘됐다. 결혼 몇년 만에 서울 시내에 132㎡(40평)짜리 집도 샀다.
하지만 가족의 병은 '돈 잡아먹는 귀신'처럼 가정의 행복을 하나둘 집어삼켰다. 1992년 태어난 아들은 어린 시절 내내 병원에서 살았다. 뇌성마비라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종일 울어댔다. 병원비가 싼 6~8인실 대신 비싼 1인실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뇌성마비 치료비는 거의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됐다. 한 달에 병원비 1500만원은 예사로 들었다. 아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에도 시어머니의 알코올 중독, 남편의 천식, 자신의 척추 치료비로 매월 2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
132㎡(40평)짜리 집은 99㎡(30평), 66㎡(20평)으로 점점 줄었다. 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월세 방으로 옮겨 다녔다. 보증금을 빼 병원비를 막았다. 천식이 심해진 남편은 2010년 사업을 접었다. A씨는 아들과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요양보호사 일도 했다. 지난해 재판이 끝나고 만났던 A씨는 "일을 하면 매달 50만원이라도 벌 수 있고, 사람들이라도 만나야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내 죄를 아들이 대신 받는다'는 생각에 '힘들다' 소리도 못 해봤다"고 했다. 24시간 가족에 매달리느라 심리 상담센터나 정신과를 찾는 일은 사치였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친정 언니 한 명뿐이었다. 울분을 속으로 삭이다 보니 우울증이 A씨를 덮쳤다.
◇"긍정적으로 살자" 다짐해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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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26일자 본지 기사. 치매 시어머니, 장애 아들과 함께 자살하려고 했던 A씨가 법원에서 징역 1년 9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그는 생전에 "우리 아들 인물이 참 좋다. 몸만 성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치료에 의욕을 보였다. 줄기세포 치료가 현실화해도 큰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월세 60만원짜리 집을 구했다. 후원금으로 집세는 겨우 메웠지만, 요양보호사 수입과 노인·장애연금을 합친 돈은 네 식구의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A씨는 "일찍 치매 치료를 받게 하지 못해 죄스럽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행동이 난폭해지고 폭언을 하는 등 치매 증상이 있었지만 2009년에야 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가족들은 "성격이 고약해지셨다"고만 여겼다.
치매는 아직까지 불치병이다. 약물로 기억력 감퇴나 난폭한 행동을 줄이는 정도이다. 정부 차원의 치매 대책이 나온 건 2008년이었다. 정부 보조를 받아도 요양원은 매달 최소 50만원쯤 들어간다. 검증 안 된 요양원도 많고,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면 불효자식"이라는 시선도 여전하다.
지난달 12일 A씨를 만난 적이 있다. 이전에 쓴 기사가 고맙다며 A씨가 마련한 '치맥(치킨과 맥주)' 자리였다. 기자가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식이 돌보기도 벅찬데 요양원에 가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겠어요. 미우나 고우나 내 부모인데…." 이날 A씨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기자님, 가족처럼 편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는 결국 '가족'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이달 중순 시어머니를 지방에 사는 친척집으로 보냈다. 허리 통증과 우울증이 심해져 시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버린 것 같다"며 앓던 A씨는 시어머니가 떠난 지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남편은 어머니에게 아내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했다. "아무리 행복했던 가족이라도 장애나 병이 생기면 돈 문제가 따라오고, 그 후에 또 다른 병이 계속 얹어지더군요. 사회가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장애인이나 병자를 돌보는 가족이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을 것 같아요. 너무 염치없는 이야기겠죠…."
출처 : 학성산의 행복찾기
글쓴이 : 학성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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