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쉬운 구원론입니다]ㅡ수정한 글입니다. [오~ 놀라운 예수의 그림자!]**(후편추가)ㅡ
아래의 글은 8단계 구원론으로 쉽게 성경 신학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본인은 과거에 관계적 신론(삼위일체)를 다루었다. 이렇게 신학은 관계적으로 이해해야만 일반 교회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신학적으로 구원론을 전개해 나가면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나아가서 존재들과의 관계가 설정이 된 것이다. 이런 시도는 구원론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하면서 또한 부족한 글을 올리도록 하락해주신 관리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인간은 타락한다.
*관계설정:[하나님]------------[인간]------------[사탄]
a.중간에 위치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선택하지 못하고 사탄의 명령을 먼저 선택한다. b.인간은 하나님께는 죄인이 되어 죄를 따라서 살다가 죽어 음부(옥)에 갇힌다. c.사탄의 음부에 갇힌 영원한 종이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죄의 종이며 죽어서는 음부에 갇히는 사망으로 들어간 것이다.
(2)하나님의 구원을 예수가 이룬다.
*관계설정:[하나님]---------[사람이신 예수]----------[사탄]
a.하늘에서 예수는 사람대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 보내어진다.(사람들의 대표로 싸움) b.세상에서 예수의 죽음을 죄인들을 위한 의인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였다.(의) c.세상에서 예수는 부활하여 사탄의 권세인 사망을 이기고 사탄을 굴복시켰다. 하나님은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고 있으며 사탄의 멸망은 재림이다.
(3)하나님의 구원을 성령은 사람들에게 적용한다.
*관계설정: [사탄-------사람-------성령------------하나님(예수)] *영적 출애굽:[애굽---홍해----광야----요단강----가나안----안식----예루살렘성]
*구원의 여정: 아래의 글은 7단계 구원론으로 전통신학과 비슷합니다.
1) 전도소명:
세상(애굽)에서 소명된다. 사탄(바로)의 종이 된 자들이 모세(예수)로 말미암아 아론(성령)에 의해서 구출된다. 이것은 전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처음 인도 된다.(소명)
2) 성령세례:
세상(애굽)에서 소명된 자들이 홍해라는 죽음의 강을 모세와 아론에 의해서(예수와 성령) 통과한다.(세상과 사탄에게서 놓임=완전결별로써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성도들로써 중생의 사건이다.
3) 광야교회:
세상의 광야로 불러진 성도들은 광야교회다.
세상과 사탄에서 벗어난 성도들이 거룩해지는 성화가 나타난다.
4) 영적훈련:
세상의 광야에서 성도들은 성령(하나님의 나라)으로 훈련받는 광야교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죄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영적으로 훈련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5) 영적성장:
세상의 광야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참 믿음으로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엣 구습을 버리면서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장한 자들이다.
6) 영적전투:
성장한 자들이 성령으로 광야를 벗어나 요단강을 건너간다.(성령의 인침) 장성한 자들은이제 하늘의 상급을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전투까지 수행을 한다.
7)하늘안식:
영적전투를 마친 영혼들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안식(쉼)처인 낙원에 이른다.(영화)
안식일을 성취하신 예수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서 몸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8)재림부활:
영적전투가 모두 마치면 쉬고 있는 영혼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부활한다.(재림)
그리고 이들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며 상급도 얻게 될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소명, 중생, 훈련, 인침, 장성, 기업, 영화, 부활로 이해하는 7단계 구원론이다.
조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칭의를 수정해야 한다.(의인으로 여겨줌)
과거 칭의를 중간의 위치에 놓았다. 그런 칭의는 초기인 출발과 함께 모두 주어진다. 이렇게 칭의 된 자들에게는 성도, 교회, 칭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별된 신분이 동시에 발생한다.(의로 여겨주는 것이다.
2)중생를 수정해야 한다.(의인으로 인정)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예수와 함께 죽고 사는 영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 중생이라는 것으로 신앙의 출발을 한다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부당하다. 구원은 개인구원이며 믿음의 고백도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경에 유아에게 세례를 준 일도 업고 또한 세례는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의식이 나타난다.
유아사망의 구원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들은 아마 부모의 신앙으로 구원이 될 것이다. 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로써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잘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3)구원은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오늘날에도 연약해서 다시 세상으로 나간 성도들이 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은 성도들과 같이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미끄러져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4)과거 요단강을 죽음의 강으로 이해했지만 사실 영적전투의 출발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성도들의 신앙이 오직 죽어서 천국에 가는 신앙으로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적 통치가 되고 있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요단강은 죽음이 아닌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이 상급을 위해서 건너가는 장성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5)영화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법보다는 안식과 낙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장소적으로 영원이 육체를 벗고 참으로 쉼을 얻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음부라는 장소에서 심판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6)광야의 성도들이라고 구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부끄러운 구원이며 상급은 적다.
광야교회 중에서 얼마는 타락하여 낙원에 이르지 못하고 세상에서 망하는 자들이 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도 모두다 광야교회를 경험한다. 그들 중에서 각각 공력대로 나타난다.
7)위의 모든 과정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발생된 신약시대 구원의 과정이다.
그 진행은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이 그 모든 순서에 관여된다.
하나님의 나라도 모든 곳에 적용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성령이 감당한다는 것이다.
**[관계적이고 서술적인 구원론]**(2)
[오~ 놀라운 예수의 그림자 구약성경!]**추천부탁!
앞에서는 [관계적인 구원론]을 [출애굽의 사건]으로 비교해서 설명하였다. 여기에서는 좀더 설명을 하고서 노아시대와 비교해서 관계적 구원을 설명하려고 한다.
앞서서 말한 것처럼 우주적이며 전체적인 구원론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구속사라는 것이며 신약시대의 구원이 구약시대의 그림자들로 잘 드러난다는 것으로 설명이 되었다.
단순히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구원을 설명하면서 그리고 긴박감도 점점 더해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끝은 항상 최후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노아시대의 물 심판을 최후의 심판과 직결해서 보통 이해하였다. 단순한 접근으로 가장 널리 생각한 것이며 물과 반대되는 불 심판이 최후에 있는 것과 대조시켜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물은 최후의 심판을 보다는 세례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최후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홍해의 물이 그러했듯이 노아시대의 물도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노아시대도 최후의 심판보다는 우주적인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대충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노아와 예수의 비교)>
*관계설정 a.노아******식구들과 동물들(방주) b.예수******모든 그리스도인(성전)
(A) [노아를 세움]****[물 심판경고]***[방주제작과 완성]***[그 방주로 들어감<세상에 물난리 기간과 둥둥 떠다니는 기간>]***[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B) [예수를 세움]****[세례 심판경고]***[하나님나라 제작과 완성]***[그 나라에 들어감<살아있는 동안과 죽은 기간>]***[예수 재림으로 모든 성도들이 나와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다]
위와 같이 출애굽과 마찬가지로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과거와 같이 노아의 심판을 최후의 심판으로 보는 것보다 예수의 사역으로 나타난 구속사적인 그림자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일치하는 모습을 보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예수를 보내려고 약속했던 기간이 구약시대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림자적인 구속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노아를 세우는 것이나 노아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하는 이 모든 과정이 실체인 예수를 두고서 사건을 진행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도구가 물(예수의 죽음)이며 심판의 기간도 두 가지(산자와 죽은 자)로 구분하고 있다. 결국 노아는 예수의 모형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구원을 이루는 자가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마치 모세와 같이 세상을 구원할 예수를 두고서 세워진 노아라는 것이다. 성경은 특히 한 사람을 강조한다.
*아담=예수 *노아=예수 *이삭=예수 *모세=예수 *다윗=예수
이러한 모형들은 철저하게도 예수를 두고서 하나님께서 미리 세웠던 그림자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형을 사람이 스스로 세운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수를 두고서 이루신 구약시대의 그림자적인 역사적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 심판의 경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아가 배를 만들려는 제작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렸듯이 예수가 세상에 오는 것도 그렇게 참고 기다린 것이다. 노아를 미쳤다고 욕했듯이 유대인들도 예수를 미쳤다고 욕했다.
*노아는 가족과 동물들과 기타 모든 생명을 위해서 홀로 희생하는 모습을 방주제작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홀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간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부활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운 것이다.
*노아시대의 물 심판은 예수의 십자가의 피를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죄인들이 죄 사함의 피를 힘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후에 낙원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천국은 현세적 하나님 나라와 내세적인 하나님 나라가 있다)
*물 심판의 두 기간도 신약시대 (1)살아있는 성도들과 (2)죽은 성도들의 기간을 의미한다.
(1)40일 밤낮으로 비가 오는 것은 살아있는 성도가 그와 같이 예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심판을 면하고 있다는 것이다.(육체로 죄 사함의 기간을 의미)
(2)40일 이후 비가 온 후에 방주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간은 육체를 벗고 죽은 성도들이 안식(낙원)하고 있는 기간으로 최후 구원의 날까지 이어진다.
여기에서 1)번에 해당되는 자들은 신약시대 성도들이며 믿음으로 현재 살고 있는 자들을 의미하며 2)번에 해당되는 자들은 신약시대 성도가 죽어서 낙원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물 심판은 성도들의 상태를 두 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물 심판으로 죽지 않고 죄를 사함 받는 기간으로 또 하나는 죄 사함을 받은 자가 죽어 낙원에서 둥둥 떠다니는 기간을 의미한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비둘기가 정착했다는 것은 환란이 지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노아가 비둘기를 놓아준 일은 세상의 심판이 끝났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계시록의 환란의 기간 즉 7년 대 환란도 최후에 일어날 실제적인 기간이 아닌 세상 전체를 두고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년 반은 구약시대이며, 3년 반은 신약시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러한 환란의 기간이 모두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노아로 시작된 새로운 세상은 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고 있다. 노아 한 사람으로 방주에 있는 자들이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듯이 예수 한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이 모두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다시는 세상에 물과 같은 심판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로 심판된 피와 같은 심판이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다시는 없다는 것과 같다. 죄가 끝나고 모든 의인들만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회개나 혹은 제사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구원론하면 조직신학적으로 너무 어렵게 이해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러한 신학들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잘 가르쳐지지 않았다. 그러한 결과 신학과 목회가 분리되어 신학이 교회의 열매로 나타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구원론도 성경적 구원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구원론이 추상적인 것이 아닌 우리와 직접 관계된 구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마치 구원의 서정을 나열하듯이 연구하는 방식에서 이제는 관계적이고 서술적인 방법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구속사적 구원론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연구는 구원론뿐 아니라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정적인 연구보다 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적인 연구는 역동적인 사건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론은 우리가 성경의 모든 것을 역사적인 것과 함께 구속사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본 노아와의 비교와 성도들의 적용>*
(A) [세상에서 노아방주선포]***[역청으로 죄 막음에 식구들 함께함]***[노아와 함께 방주로 모두 들어감]***[노아와 함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와 새 세상으로 출발한다]
(B) [세상에서 예수구원선포]***[죄를 위한 죽음에 성도들 동참]***[예수와 함께 성도들도 장사지냄]***[부활한 예수로 성도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 출발한다]
*위와 같이 성도들의 구원을 4단계로 적용하기도 한다.
1)구원의 선포(방주로 심판을 피하라 경고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포에 응답한다. 구원의 선포에 믿음으로 소명된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다.
2)죄 사함의 은혜(방주에 들어가 물의 넘침을 막아낸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와 함께 죽는다. 예수의 희생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믿는다. 세상에서 복음을 믿고 나온 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믿고 죄 사함을 얻는다.(교회)
3)예수와 함께 장사지낸다.(방주에서 참 안식한다) 예수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이 예수가 준비한 낙원에서 쉼을 얻는다.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얻은 자들이 죽어서 낙원에 들어간다.
4)예수로 말미암아 부활한다.(방주에서 새 생명으로 나온다)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지낸 성도들이 부활한 예수로 말미암아 부활하여 새 세상을 얻는다. 예수로 말미암아 낙원에 있는 성도들이 장차 부활의 예수로 부활하여 살아난다.
이와 같이 예수와 함께 죽고 사는 연합을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면서도 실제적으로 적용된다. 영적연합에 의한 실제적인 적용이 따라온다. 구원의 과정을 7단계로 설명하는 것이나 혹은 4단계로 설명하는 것이나 모두 구원을 이루는 중심에는 예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구원의 과정을 틀에 꼭 맞추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구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우리의 사고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평가했다. 즉 우주적인 구원보다는 개인구원으로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을 강조한 구원사상이 주로 차지했다. 그 결과 천국의 두 측면 하나는 현세적인 측면과 내세적인 측면을 모두 강조하지 못한 것이다.
방주도 그렇다. 방주는 구원의 방주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 그런데 흔히 방주를 교회로 생각했다. 교회=방주라는 사고는 철저히 방주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우주적인 방주의 구원론을 설명하는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제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방주는 우주적 성전의 의미도 있다)
출애굽이든 방주이든지 세상을 구원하는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의 죽음과 부활의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원론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성도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출애굽과 노아심판의 비교(4단계)>
*관계설정: 노아와 모세
방주로 심판을 피하라**노아방주를 만든다*****40일 주야비 120일 떠다님**새로운 땅 출발 애굽에서 구원 받으라**모세의 10재앙승리**40년 광야와 가나안**새로운 땅에서 분깃 얻음
꼭 짜 맞추듯이 맞추는 것보다 대충 이렇게 서로 비슷한 양상을 지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역할이 구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고 최종적인 것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새롭게 얻는 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그림자를 만드신 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으로 진행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는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한 인물을 위해서 이렇게 철저히 구약에서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설명하면 언제든지 항상 비슷하게 설명되어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1)예수의 심판과 구원선포이다. 2)다음은 예수가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3)다음은 예수로 성도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현세와 내세) 4)다음은 최종적으로 부활한 예수로 승리하여 나온다는 것이다. . (2007년 3월 24일 김 인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