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역사

[스크랩] 기독교 개혁의 역사1.?

한주랑 2014. 1. 3. 23:15

 

 
기독교 개혁의 역사1.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함
여러 세기 동안 수 만 명의 크리스챤들이 순교를 당했으나, 신앙과 기독교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순교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 흘릴 수록 더 많은 크리스챤들이 생겨났다. 핍박과 고문과 죽음은 그리스도교를 없앨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을 피로 인쳤고, 그것으로 인하여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핍박의 시대가 지나가고 겉으로 볼 때 크리스챤들에게 평화스러운 듯이 보이는 시대가 도래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주후 312년경, 콘스탄틴이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여 사용한 로마의 융화정책으로 온 변화 때문이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교도들과 크리스챤들을 모두 수용하여 국가를 통합하려는 정책으로 그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던 토요일 안식일을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경배하던 일요일로 바꾸어 그 날을 공식적인 국가의 예배일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인 넷째 계명이 사람의 권한으로 바뀌어지는 일이 생겼다. 이런 일들과 함께 기독교에는 많은 이교의 가르침과 예배 형식이 스며들었고, 핍박을 받을 때는 순결하던 하나님의 참 교회는 세속과 타협하게 되었다.


또한 이 일은 사도 바울의 예언한 것처럼 법왕권의 일어남과 그것이 초래할 큰 배도에 대한 길을 열어주었고, 또 교회 안에 스며 들어온 오류들로 법왕권의 가르침이 더욱 확립되도록 만들었다. 일찍이 바울은 법왕권과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3,4)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계속하여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살후 2:7)다고 형제들에게 경고하였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적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지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들의 교만과 허식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금씩 비밀리에 진전되었으나,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더욱 공공연하게 기만적이요, 참람된 교리를 진척시켰다.

 

로마 천주교의 등장과 세력
크리스챤들의 교회는 벌써 오래 전에 이교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교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교리가 적당히 섞여진 채로 로마는 기독교 국가처럼 행세하였고, 고대제국의 영역 안에서 거의 모든 세계는 로마를 신앙의 지상도성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6세기에 법왕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그들은 교황을 하늘의 가시적 중재자로 보았다. 이교는 그의 지위를 법왕에게 넘겨 주었다. 곧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계 13:2)를 준 것이다.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된 1260 년간의 법왕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


이제 교회와 교회의 의식, 감독, 성직자들을 위하여 세워진 듯한 로마는 크리스챤들을 다스리는 거대한 힘을 강화시켰으며, 교회는 교황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가장 높은 교회의 공직을 차지한 사람들을 폭군으로 만듦으로써 그 사명의 끝을 맺었다. 어느새 교황의 힘과 그가 임명한 사람들의 힘은 절대적이 되었고, 그들이 세운 교회의 법이나 의식을 항거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한치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성경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을 지키는 크리스챤들은 억압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의 전권적 율형에 대항하여 감히 그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자마자 “이단”이 되었다.


교황권이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였던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면서 기독교회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수많은 정치인들과 이교도들이 황제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기독교회로 새로 개종한 황제는 이교도들의 반발을 막기 위하여 그들의 풍습과 전통인 우상을 만들어서 신전에 세우는 관습과, 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 드리는 날을 기독교회가 수용해 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교황권의 지도자들은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을 변경시킴으로써 황제의 요구를 수락하였던 것이다.

 

암흑의 세력에 대항한 왈덴스인들

이렇게 신실하게 신앙을 고수하며 법왕권의 침입을 저항한 사람들 중에서 왈도파 - “왈덴스인” (Waldenses)들이 최선봉에 섰다. 수백 년 동안 그들은 알프스 산맥 동부에 위치한 험한 산골짜기에서 피난처를 찾고 거기서 살았다. 그들은 법왕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에 살면서도 그 허위와 부패를 꿋꿋이 저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험준한 산 속으로 피해 가서 거기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왈덴스”교도들이 몇 세기 동안 가르쳐 온 신앙은 로마로부터 나온 허위의 교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었다. 세상과 차단된 궁벽한 곳에서 날마다 양떼를 치며 포도원을 가꾸는 매일의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비천한 그 농부들은 배교한 교회의 교리와 이설(異設)에 반대되는 진리를 자기들 스스로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왈덴스인들의 신앙생활

첩첩이 싸인 알프스 산악의 높은 성채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박해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이 곳에서 중세기의 암흑을 뚫고 진리의 횃불이 계속하여 타올랐다.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말틴 루터도 왈덴스인들의 가르침과 성경을 통하여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는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묏부리처럼 영원하신 이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궁벽한 산중에 외로이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강포를 피할 수 있는 한 피난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때때로 원수들의 추격을 받았지만 험준한 그 산들이 견고한 산성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절벽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으나 로마의 군대들은 그들의 감사의 찬미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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