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역사

[스크랩] 요세푸스와 신약성서

한주랑 2014. 1. 3. 23:18

 

 

<요세푸스와 신약성서>,

스티브 메이슨 지음, 유태엽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 요점 정리해 보았습니다. 느낀 점도 약간 보태고...

 
1. 요세푸스가 누구인가?

AD. 37-100년(?)

왕과 대제사장을 배출한 하스몬 가문의 후손인 듯. 젊은 시절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유대 지식인으로서 1세기 경의 유대 사회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 특히 에세네파에 대한 풍부한 정보 있음. 유대전쟁 (66년부터 74년까지 로마에 항쟁한 독립전쟁. 70년 예루살렘 함락. 74년 마사다함락) 당시 갈릴리 한 지휘관이었는데 도망하고 항복함 (장군은 부하와 함께 죽어야 하는 유대의 율법에서 볼 때 수치스러운 행위). 감옥. 결혼. 로마의 시민권 얻음. 황제의 후견으로 주택과 연금 제공받음. 역사 집필.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 등 저서 4권

 

2. 로마 중앙정부의 군사적 경제적 지배는 혹독한 착취가 아님. 지역 문화, 관습, 종교 존중. 그래서 유대교도 존중. 정치적으로도 화해 협력 관계.

유대인들은 (로마가 통치하는) 이방 지역에서 정상적인 시민 생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지역 종교 제의나 축제에 참여할 수 없음. 공적인 임무에 참여할 수 없음. 무신론자 혐오스러운 사람들로 비난받음.

이런 상황에서 유대지역 반란. 총독들에 대한 반감이 원인. 반로마 감정의 마지막 폭발. 그런데 요세푸스는 일부 유대인들의 야욕과 불경건함을 더 큰 원인으로 봄. 무모한 도전이었고 결국 로마에 진압당함. 유대 점령 기념 동전. 기념 아치. 로마사회에 반유대 분위기 고조.


 

3. ‘유대전쟁사’에서 유대 반란을 주동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무모한 행위로 봄. 로마는 하느님의 뜻의 실현으로 이를 진압한 것.

유대교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반감에 대한 변명. 유대의 전통과 종교에 대한 옹호. 훌륭한 철학으로 설명. 요컨대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교양 있는 로마인의 인상에 박혀 있는 유대인에 대한 조롱과 곡해를 온 힘을 다해 씻어내려고 하는 일종의 켐페인이었다.(p. 102) 당시 철학 사조의 틀에서 유대 율법은 매우 훌륭한 철학임 주장.


 

* 느낀 점 - 민족의 반역자(친일파와 같은 사람)로서 유대전통과 율법 옹호하는 책을 쓴 것은 참 복잡미묘한 모습. 민족을 위한 봉사로 죄과를 만회하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자기변명의 일환일 수 있다고 생각됨.
 

4. 신약 성서 시대에 대한 중요한 자료들.

헤롯 왕. 헤롯 안티파스. 빌라도를 비롯한 로마총독들. 대제사장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 설명이 많은데 흔히 알고 있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없어 보여 생략함. 한가지 요세푸스는 에세네파를 가장 칭송. 이점이 흥미롭다.)

"요세푸스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그들(* 에세네파)을 모범적인 유대인들로 소개한다. 그들은 엄격한 섭생법에 따라, 감탄하리 만큼의 단순하고 철학적인 삶을 살았다. 모든 소유를 공동으로 하면서, 결혼과 노예 소유를 포기했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과 마음이 원하지 않는 고통을 참아낼 줄 았았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주를 하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다. 그들의 덕은 헬라인인나 야만인들의 덕에 견줄 수가 없는 것이다. (p. 186-187)" 
 

5. 신약성서 인물들.

세레 요한 언급 - “요한은 선한 사람이었으면 유대인들에게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며, 그들이 이웃에게는 정의를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서는 경건을 행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세례를 받도록 인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롯이 그를 처형”했다고. (p. 210)

요세푸스는 요한을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있는 인물”로 보지 않는다. 그를 예수하고는 관련이 없는, 스스로의 메시지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는 유대의 유명한 설교자로 소개한다. (p. 215) (1) 요한의 추종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 살아서, 여전히 독립된 그룹으로 알려졌고, 1세기 중엽에 아시아로 흩어졌다. (2) 요한의 설교는 예수의 오심이나 미래에 있을 성령 세례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p. 215)

예수에 대한 짧은 기록 - 아마도 후대 필사자들이 개작한 것으로 추정됨. (p. 226-241)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사형당한 사실 나옴.

 

* 느낀 점 - 예수의 사건은 당시 상황에서 요세푸스에게 중요한 관심사나 크게 다룰 만한 사건이 아니었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고는 있으나 크게 주목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 기록으로 보아 이 당시 유대사회에 유사한 사건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 관점에서 보면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사회의 여러 사건들처럼) 당시 유대사회에 예수 사건보다 더 큰 사건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런 사건들을 겪으며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예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몰랐거나 알았어도 금방 잊혀진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6. 요세푸스 : 누가 복음, 사도 행전

일부 같은 자료에 대한 다른 해석이 드러나.

당시 역사 서술에 나오는 연설은 저자가 하고 싶은 주장을 등장인물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13개의 연설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함.(p. 269)

 
당시 기독교인들 모습. (p. 274)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외부인들의 눈에 유대인들과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1세기 말경에는 바울의 선교적 노력에 힘입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완전히 비유대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그들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알려진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 그들은 밤에 비밀리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나서 서로 키스로 인사를 나누고, 누군가의 ‘몸과 피’를 나누는 공동식사를 함께한다. 2세기 중엽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사람을 잡아 먹고 성적으로 난잡하다는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위대한 영웅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라는 소외된 지역에서 최근에 로마 총독에 의해 십자가형 - 살인자들과 문제를 일으킨 자들을 위한 처벌 - 을 받고 죽은 한 남자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그들은 어떤 역사, 어떤 지형적인 중심, 어떤 성전 혹은 희생제사, 어떤 고대의 제도, 그리고 어떤 종족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많은 전통적인 종교들과 아주 달랐다. 그들은 당시 많은 ‘자발적 모임’과 유사했다. 그러나 다른 모임들은 중앙 정부로부터 집회허가를 받은 반면(중앙 정부가 정치적인 소요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모이는 진정한 동기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새로 출현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로마의 지식인들은 기성의 외국 종교들(유대교를 포함하여)마저도 ‘미신’으로 보고 제거하려는 판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미신이었던 그리스도교는 이중으로 비난받았다. 그것은 유대교의 특별한 양태를 다 지니고 있었고, 또 ‘비사회적’ 행위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대성’(아마도 당시의 시대성을 의미하는 듯)이 결여되어 있었다.

 
요세푸스와 누가는 모두 로마 세계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자신의 종교, 즉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변호하기 위해 그 종교의 시대성과 덕을 입증해야 했다. 여기서 ‘덕’은 높은 공공의 윤리를 포함하며, 동시에 입증된 정치적인 훌륭한 태도와 로마와의 평화와 협력을 포함한다.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은 유대 전쟁과 유대의 패망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 신약성서는 주로 예수 죽음과 기독교인 박해에 대한 책임으로 유대인들을 지목한 것. 로마에 대한 책임이나 원인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당시 상황의 필요성에 기인한 바 있음(빌라도를 비교적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것 등). 이를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 느낀 점 - 신약성서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예수의 죽음과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 부분)이 많아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유대율법에 대하여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유대인들 입장에서 신약성서를 보면 억울한 면이 있지 않겠는가.

당시 그리스도교회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기 정체성 수립의 필요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유대교에 대하여 날카롭게(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의 본래적 가치를 옹호하는 요세푸스의 주장은 좀더 균형있는 시각을 위해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예수가 어떤 사회에 태어났어도 결과(처형. 결국 그 세계에서 추방)는 같았을 것. 인간 사회는 예수를 감당할 수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성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어느 사회에나 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 특별히 악한 존재들이 아니다. 예수와 관련된 사건에서 어떤 악역을 맡게 된 사람들도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의 행태와 똑같다.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ㅡ 옮겨온 글입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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