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언제 건국되었나?
증거1. 동이족 문화인 홍산문화의 청동기 유적은 BCE 24세기 유물
현 주류 사학계에서 청동기 유물로 고조선 역사를 규정하고 있으니, 청동기 시대를 가지고 고조선 역사를 분석해 봅시다.
내몽고 적봉시에 가면 북쪽에 홍산(紅山)이라는 붉은 산이 있습니다. 그 일대에서 많은 유적 유물들이 나오는데, 그걸 통칭해서 홍산문화라고 부릅니다. 중국 측 자료들을 보면 홍산문화를 중국문화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 문화가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홍산문화는 동이족의 문화죠.
홍산문화 중에 아주 중요한 유적 중 하나가 우하량 유적입니다.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탈이나 각종 옥(玉) 등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그 지역 무덤 형태도 고구려 시대까지의 우리 전통 무덤 형식과 같습니다.
재작년에 그쪽 지역 답사를 가봤더니 우하량 유적 한가운데를 뻥 뚫어서 4차선 도로를 놓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자기네 문화라고 해놓고도, 홍산문화를 계속 연구해서 그것이 동이문화라는 게 밝혀지면 동북공정에 상당히 불리하다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파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산문화로 표현되는 중국, 만주 그리고 내몽고 지역의 문화들은 고조선의 전사(前史)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청동기를 조사해보면, 가장 빠른 시기 것을 제외하고 중간시기 것만 놓고 봐도 BCE 24세기 때 유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조사하면 할수록 그 연대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조사된 것만 기준으로 봐도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이야기한 BCE 24세기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중국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우리 민족의 문화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게 됩니다.
증거2. 동이족 치우천황의 금속무기
중국의 역사왜곡의 또 하나 예가 ‘치우’입니다. 중국 하북성 탁록현에 ‘귀근원(歸根園)’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삼조당(三祖堂)’이 있는데, 중화민족의 세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중국에서는 동북공정뿐 아니라 서북공정, 서남공정으로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여러 다른 민족들을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귀근원을 세우고 삼조당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전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치우까지도 자기네 조상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치우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나 중국의 여러 기록들, 그리고 『환단고기』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경우 기존 학계에서는 위서(僞書)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죠.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중국 각지를 답사 다닌 뒤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중국의 원 조상은 삼황오제(三皇五帝)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답사도 다녀보고 여러 사료를 봤지만 삼황은 중국의 실재했던 역사로 보기 곤란하다고 보고, 삼황에 대한 부분을 『사기』에서 빼버립니다. 현재 『사기』에 남아있는 삼황에 대한 기록은 당나라 시대 때 장수결이라는 인물이 집어넣은 거죠.
사마천이 실제 역사적 사실로 생각한 것은 오제부터입니다. 오제의 첫 번째가 황제이고 이 황제(BCE 2692~BCE 2593)와 싸웠던 인물이 바로 치우입니다.
『사기』에 따르면, 치우는 중국인의 조상인 황제와 싸웠는데, 머리가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고 썼습니다. 머리는 구리이고 이마는 쇠라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BCE 27~BCE 26세기) 치우로 대표되는 집단은 금속문명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치우를 중국이 1990년도에 자기네 조상으로 편입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환부역조(換父易祖)입니다.
증거 3. 고인돌, 비파형동검 출토지역은 고조선의 영토
고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입니다. 고인돌은 중국 요녕성에서부터 우리나라 남쪽 흑산도에까지 같은 형식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같은 내세관, 같은 문화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산동반도에서도 한두 점 발굴됐는데, 화하족이라고 불리는 중국민족이 사는 지역에서는 단 한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모든 문명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청동기나 철기도 다 중국에서 왔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교과서가 서술됩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러냐? 청동은 주석과 아연의 합금인데, 우리나라 청동검에는 아연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아연은 섭씨 7∼8백도에서는 날아갑니다. 그런데 청동검을 만들려면 섭씨 1200도씨 이상 가열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청동기에 아연을 섞는다는 것은 굉장히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우리나라 청동기에는 아연이 20∼30%씩 들어있습니다. 반면 중국 청동기는 아연이 거의 함유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연을 합금할 기술이 없었던 거죠. 고조선의 청동기술이 중국보다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비파형 동검은 중국지역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습니다. 이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역이 바로 동이족의 세력범위, 즉 고조선의 세력범위하고 아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몽고 지역에서도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이 발견되었습니다. 거푸집은 비파형 동검을 만드는 틀인데, 그 틀이 나왔다는 것은 그곳이 고조선의 중심지역 중 하나라는 걸 뜻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과 같이 철생산의 중심지라는 뜻이죠.
고조선의 청동 제조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청동기에서 철기로 발전하는데, 철기 제조기술도 우리가 아주 압도적으로 발달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는 철기는 위만이 갖고 온 것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기록에 위만이 철기를 갖고 왔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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