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언제 건국되었나?
고조선은 제후국을 거느린 황제국가였다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우리나라의 주류학설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평안도 일대에 걸쳐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당히 의문스러운 구절들이 많습니다.
『한서』에 따르면, 조한(朝漢)전쟁은 고조선이 한나라에 조공 바치러 가는 여러 나라를 못 가게 막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조선이 평안도에 위치해 있었다면 무슨 재주로 만주나 북방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막겠습니까? 전제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하고 연배가 비슷한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 때 ‘한사군’이라 해서 ‘낙랑, 임번, 진둔, 현도’라는 이름을 달달 외우고 위치까지 외워야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한사군이란 게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거기에 설치했던 중국의 식민통치기관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달달 외워야 됐다? 그것도 해방된 나라에서. 그건 마치 조선에 주둔했던 조선 총독부의 1대 총독은 누구고, 2대 총독은 누구라는 것을 외워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나라는 해방됐지만 역사관은 전혀 해방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과연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한나라가 이겼느냐? 한나라가 이겼다면, 한무제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에게 포상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순체’라는 장군은 목을 베서 저잣거리에 걸어두었고, ‘양복’이라는 장군은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막대한 돈을 바치니까 신분만 강등시키고 목숨은 살려줍니다. 그 외에 ‘위산’과 ‘공선수’라는 장군은 사형당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계 전쟁 역사상 이긴 장수를 이렇게 대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면 고조선에서 한나라에 항복한 사람들은 전부 제후로 봉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후로 봉(封)함 받은 지역이 산동반도에서부터 위쪽에 이르는 지역들입니다. 왜 고조선에서 한참 떨어진 이 쪽 지역을 봉토(封土)로 줬을까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한사군은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한사군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외웠던 한사군은 모두 한반도내에 있습니다. 이병도 씨가 쓴 『조선사대관』(동지사, 1948)에 나오는 내용이죠. 그리고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은 평양지역에 있다고 하죠. 낙랑군의 위치는 고조선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기』 「태강지리지」에 나옵니다.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이 어딘가를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병도씨는 『한국고대사연구』에서 수성(遂城)에 대해 “맹랑하지만 황해도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써놨어요. 자기 자신도 그 글에다가 ‘맹랑하지만’이라고 썼어요. 그리고 그 근거는 뭐냐? ‘수’ 자가 같기 때문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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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명에서 ‘수’ 자 같은 지명 찾으면 백 개 이상 나옵니다. 그리고 갈석산이 있어야죠. 근데 없으니까 그냥 근처에 산 하나를 ‘저것을 갈석산이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황해도 수안이 수성현이 됐고, 장성(만리장성)이 여기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요새 중국박물관에 가면 만리장성이 한반도 황해도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그 이론 제공을 우리 사학계가 한 겁니다.
그럼 실제로 수성현과 갈석산은 어디냐? 중국 하북성 창려현에 가보면 갈석산이 있습니다. 그 지역은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또 『수서』에 보면 ‘수성현이 현재의 창려현’이라는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부분이 다 맞아떨어집니다.
또 하나의 근거로,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 평양성을 침공할 때 좌군 12군, 우군 12군을 나눠서 진격로를 제시해줍니다. 그 진격로에 이 사군 이름이 거의 다 나옵니다. 낙랑이 평양에 있다고 하면 수양제가 북경 북부 탁현에서 24군을 출발시키면서 ‘너는 낙랑을 거쳐서 낙랑으로 와라’고 하는 셈이 됩니다. 공수부대라면 모를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죠. 결론적으로 중국 고대 기록들을 봐도 낙랑군 지역은 현재의 하북성 창려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사군이라는 것은 난하 근처 산해관 일대, 고조선 서쪽 끝자락에 일부 형식적으로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한나라가 고조선의 영토를 거의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합해볼 때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은 외형상 중국이 이겼다는 형태를 취했지만, 고조선은 전쟁에 져서 무너졌다기보다는 지배층이 분열하면서 자체 붕괴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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